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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명구 칼럼] 어떤 학문과 학자를 키울 것인가

등록 2013-10-13 19:11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우리는 ‘창조경제’를 견인할 지식 생산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세계적 수준에서 볼 때 자체 지식 생산 능력을 갖춘 나라는 몇 되지 않는다. 20세기 초반까지 독일을 비롯한 유럽이 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을 주도했고,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60여년간 미국은 지식을 생산하는 데서뿐만 아니라, 지식의 표준을 만드는 나라였다. 지식의 표준이란 어떤 지식이 필요하고, 무엇이 좋은 지식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을 의미한다. 이 기준에 따라 어떤 책은 도서관으로 가고, 어떤 논문은 쓰레기통으로 간다.

표준을 만들고 기준이 되는 지식을 생산하는 능력을 갖춘 나라는 크게 잡아서 미국 이외에 독일, 영국, 프랑스 정도라 할 수 있고, 일본은 과학과 공학 분야, 그리고 몇몇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그런 기준을 충족시키는 학자군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탈리아, 네덜란드, 이스라엘, 북유럽의 몇몇 나라 그리고 중국과 함께 그 안으로 진입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셈이다.

이런 목표를 위해 1990년대 중반 이후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은 ‘두뇌한국 21’(BK21)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대학의 지식 생산성을 높이는 정책을 시행해왔다. 많은 성과가 있었고, 한국 대학들의 경쟁력 순위도 많이 올라갔다. ‘과학 피인용 지수’(SCI), ‘사회과학 피인용 지수’(SSCI) 등 수많은 대학교수들이 인용 지수가 높은 학술지에 논문을 싣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을 기울여왔다. 많은 대학들이 이들 인용 지수가 높은 저널에 논문을 출판하면 1000만~2000만원의 포상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서울대, 포항공대, 카이스트 등이 세계 대학 순위 100위 안으로 진입하기도 했다.

외국 학술지에 의존해 연구성과를 평가하는 정책을 시행한 지 10년 남짓 되었다. 이 정책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한 단계 더 나아가는 정책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외국 학술지에 대한 의존을 버려야 한다. 필자는 2008년 사회과학 분야(정치학·사회학·지리학·사회복지학·언론정보학)에서 영향력 지수가 1~3위인 최고 저널에 10년간 실린 논문 전체를 분석한 바 있다. 그 결과 비(非)미국, 비유럽에 사는 연구자(예를 들어 대만·일본·브라질 등)가 게재한 논문은 5% 미만에 그쳤고, 이 5%의 논문들도 대부분 미국의 주류 연구를 따라가는 연구들임을 밝혔다. 한국 경제, 한국의 민주주의, 한국의 역사와 철학을 분석하면 이들 저널에 실리기 어렵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한국의 인문사회과학은 자체 기반을 상실할 것이다. 미국 정치학자, 사회학자가 관심 가지고 있는 이론이나 연구 문제를 반복하는 연구들만 양산될 것이다. 한국연구재단은 그런 연구를 세금을 가지고 지원하는 셈이다.

둘째, 논문 개수를 따지는 평가기준을 질적 평가로 바꿔야 한다. 그 기준은 당연히 자체 지식 생산 기반, 표준을 만드는 지식을 만들어내는 ‘의미 있는’ 논문인가가 관건이 돼야 한다. ‘의미 있는’ 논문은 해당 분야에서 인식의 전환, 방법의 전환, 현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논문이나 저술을 가리킨다. 5년에서 10년 걸려 한 주제에 천착하는 저술과 논문을 평가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이 점은 학계가 크게 반성해야 할 부분이고, 각 대학들이 세계 대학 평가 순위에 연연할 게 아니라 지식 생산의 자기 기반을 만들 수 있는 지원 정책을 입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셋째, 지식 생산 기반의 또 하나의 축은 학문 후속 세대다. 서울대를 비롯해 우수하다고 스스로 자랑하는 대학들이 학문 후속 세대를 키우고 있는가. 우수한 서울대 졸업생들은 대다수가 외국, 그것도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 버클리대 다음으로 미국 박사를 많이 배출한 대학이 서울대라는 사실은 이제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움이다. 국내 박사 학위자를 하대하는 풍토가 계속되는 한, 한국 사회를 연구 주제로 연구하는 학문 후속 세대를 키우기 어렵다. 노벨상 수상자 1명을 몇십억씩 주고 모셔올 게 아니라, 학문 후속 세대에게 최소 생활이라도 보장하는 제도가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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