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구 논설위원실장
우리는 왜 통합의 정치를 하지 못하고 분열과 대결의 소모적인 갈등만 지속하고 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갈등 요인은 해방 이후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기득권층의 극우·반공주의 때문이라고 본다. 이념의 시대가 갔다고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권 들어 극우·반공주의는 ‘종북 프레임’으로 되살아나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이는 사회 전 분야로 확산되면서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다양한 이념의 공존을 가로막으며 사회 발전에 최대 저해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 와중에 통합의 정치는 실종되고 분열과 대결의 정치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북방한계선(엔엘엘)을 둘러싼 공방이 대표적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엔엘엘 포기 발언을 했다며 야당 후보를 공격했다. 피로써 지킨 엔엘엘을 북한에 헌납한 노 전 대통령의 후계자(문재인)에게 어떻게 나라를 맡길 수 있겠느냐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주장이 수구보수층 표심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지도 국정원은 인터넷상에서의 종북활동을 차단하기 위해 댓글 활동을 했다고 주장한다. 기득권층의 집권 연장을 위해 우리 사회를 분열과 대결의 늪에 빠뜨리는 종북 프레임을 최대한 활용한 셈이다.
어쩌면 속셈이 뻔히 보이는 이런 종북 프레임이 먹혀드는 것은 호전적인 북한이 바로 코앞에 있다는 현실 때문이다. 핵실험을 거듭하며 남북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호전적인 발언을 일삼는 북한은 가상의 적이 아니라 실재하는 적이다. 더구나 6·25 전쟁 등에 대한 참혹한 기억이 아직 남아 있는데다 잊을 만하면 무력도발을 자행하는 북한이 존재하는 한 극우·반공주의에 바탕한 기득권층의 종북 프레임은 당분간 일정 정도의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여기에다 이석기 의원 사건에서 보듯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서는 납득하기 힘든 일부 좌파세력의 시대착오적인 행태도 종북 프레임의 생명력을 유지시켜 주고 있다.
종북 프레임은 적대적 남북관계를 자양분 삼아 작동한다. 남북이 화해와 평화의 길로 나아가면 종북 프레임은 자연히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평생을 색깔론에 시달렸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토록 남북 화해와 통일을 추구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고, 극우·반공세력들이 그토록 남북 화해를 방해했던 것도 사실은 종북 프레임의 터전이 허물어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런 구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7월 국민대통합위원회를 발족하면서 “국민통합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기본토양”이라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종북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종북 프레임이 작동되는 한 우리 사회는 통합은커녕 분열과 대결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종북 프레임이 건재한 가운데 국민 통합이 이뤄지려면 국민 대다수가 극우·반공주의에 동조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종북 프레임의 속성 자체가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을 기본 가치로 하는 민주주의 원리에 반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국민 저항을 불러오고 이는 곧 사회 갈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관건은 종북 프레임의 작동을 가능하게 하는 적대적 남북 관계를 평화·공존의 관계로 바꿔나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 모든 갈등의 원천인 종북 프레임이 힘을 잃고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통합의 정치가 자리잡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득권층이 종북 프레임을 버린다는 것은 그들이 대대로 누려온 권력과 이권의 일부를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새누리당 당직자들뿐 아니라 차기 대권을 노린다는 김무성 의원조차 종북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사는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오히려 ‘앞으로 20년은 더 집권’하기 위해 종북 프레임을 더욱 강화하고, 그러기 위해 남북 관계를 계속해 적대적 공생관계로 끌어가고, 그 결과로 우리 사회를 분열과 대결의 혼돈상태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대한민국의 앞날이 암담할 뿐이다.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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