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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혜정 칼럼] ‘아이 돌보미’와 ‘가사 도우미’ 사이

등록 2013-10-08 19:08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10월4일 한 주요 일간지의 “하녀 취급에… ‘대학생 아이 돌보미’는 운다”는 제목의 기사에 깜짝 놀랐다. 이 기사에서 다룬 ‘대학생 아이 돌보미’ 사업은 그간 내가 열심히 자문해온 사업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면, 이웃집 혜진 어머니는 아이 셋을 훌륭하게 키운 뒤 ‘빈 둥지 증후군’으로 우울해했는데 아이 돌보미를 하며 행복해졌다. 서류 작업이나 전화 상담 등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혜진 어머니는 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저녁에 데려와 부모가 돌아올 때까지 돌보는 일을 하며 천직을 찾은 것 같다고 했다. 혜진 어머니를 보면서 아이 돌보미 사업이 참 괜찮은 사업이라고 생각을 하던 차에, 서울시에서 이 사업에 대학생들도 참여시키는 식으로 가보겠다고 하여 기꺼이 자문에 응했다. 특히 나는 유치원 때부터 부모가 시키는 대로 공부만 하느라 사회성과 공감 능력을 키우지 못한 요즘 대학생을 보면서, 이런 프로그램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왔다. 방과 후 학교에서 동네 아이들을 돌보며 부쩍 성장하는 대학생들을 보면서, 한국의 청(소)년들이 동네 아이를 돌보는 경험을 제대로 한다면 교육 문제도 해결되고 국력도 막강해질 것이라는 생각에 이를 제도화할 방안을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대학생들이 지원을 하지 않을까 봐 노심초사하던 담당 공무원들은 229명이나 신청을 했다고 기뻐했고, 선발된 ‘우수한’ 대학생 50명은 80시간의 교육과 10시간의 현장 실습 후 7월부터 현장으로 나갔다. 그리고 담당 공무원들은 이들이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수시로 모니터링하였다. 그런데 이 사업에 대해 “市(시)의 관리부실에 학생만 피해… 주먹구구식 보육정책 부작용”이라는 평가를 내린 기사가 나와서 당사자들은 매우 황당해진 것이다. “우리는 아이를 돌보는 사람이지, 설거지하는 사람이 아니에요”라는, 가명으로 처리된 한 학생의 말로 시작한 이 기사는 “서울시가 뽑은 학생들… 파견 가정선 ‘가사도우미’처럼 대해”, “대부분 유아교육·아동복지과 ‘현장 경험 위해 지원했는데…’ 학부모, 청소·설거지까지 시켜”라는 부제로 이어지고, “한 대학생이 아이 돌보미로 파견된 가정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라는 설명과 함께 부엌에 서 있는 남학생 사진을 실었다. 사진 속 주인공인 남학생은 이 프로그램의 반장이었는데 종종 달걀 프라이를 아이와 해먹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사용한 그릇을 싱크대에 두고 물을 부어 놓은 것을 ‘설거지’로, 장난감을 아이와 함께 정리한 것을 ‘청소’라고 불러주니 오히려 감사하게 들린다며 황당해하면서 이런 기사로 그간의 친밀한 관계가 어색해질 것을 우려했다.

인터뷰를 한 대학생 돌보미들은 기자가 불만을 이야기하라고 자꾸 유도하더니 그게 이런 어이없는 기사로 실렸다면서 정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 기사는 객관성과 진정성 면에서도 문제가 있지만, 돌봄 노동에 대한 이해 부족 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아이를 돌보는 일에는 장난감을 함께 치우고,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데워 저녁상을 차려주고, 때로는 먹던 컵을 같이 씻겠다고 달려오는 두살짜리 아이와 함께 그릇을 씻는 일도 포함된다. 이는 가사 도우미의 일을 아이 돌보미가 하고 있다고 따지거나 ‘하녀’라는 노동의 귀천 개념을 연결시킬 사안이 아니다. 이 일은 진정한 관심과 사랑, 신뢰와 교감이 중요한 노동이며, 성과를 쉽게 지표화할 수 없는 특별한 성격의 일이다. ‘돌봄 결핍 사회’를 ‘돌봄 사회’로 바꾸어가는 패러다임 전환기에 노동·일·활동을 통합시키면서 삶의 영역을 새롭게 구성해내는 성격의 노동인 것이다.

이런 새로운 시대적 사업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모처럼의 소중한 싹을 틔우는 움직임에 어쭙잖은 칼을 들이대지 않도록 기자들은 공부를 좀 해야 하지 않을까? 기사를 읽다가 문득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를 부추기는 파시스트 저널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기자들이 모여 언론인 선서라도 한번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네거티브 흑색선전의 날을 세우는 기류가 높아지고 있어서 더욱 그런 모양이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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