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사례 1: “우리 사회는 복지를 곧 재원의 문제라고 본다. 너무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재원 문제만 논의해서는 그 정책이 추진되기 어렵다. 어떤 정책이든 사회적 합의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오로지 재원만 논의하는 것은 맞지 않다. … 이것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합당한 것인지 이런 논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보건복지부에서 차관을 지낸 한 전직 고위 관료의 발언이다. 그는 지난달 한 국제심포지엄의 기조 강연에서 강연 내용의 상당 부분을 정부의 복지정책 결정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할애했다. 그는 “노인복지 정책의 접근 방법이 합당하지 않다”며 정부안의 복지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적잖은 불만을 드러냈다. 대놓고 ‘기획재정부’를 겨냥하기도 했다. 나아가 “국회도 논의를 복지부가 아닌 기재부와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는 이어 “복지는 재원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철학적 문제도 반드시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지는 한마디로 주요 복지정책 결정 과정에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소외돼 있고, 기재부가 사실상 핵심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사례 2: “저는 오늘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의 책임을 통감하기 때문에 사임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드린 점에 대해서 송구하게 생각하며 국민의 건강과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2013. 9. 26. 진영 드림”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기자들에게 보낸 이메일 전문이다. 일찍이 측근을 통해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사퇴 파문을 낳은 그는 정홍원 국무총리의 설득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표 반려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메일 사임이란 낯선 방법을 선보이며 이른바 ‘항명 파동’의 당사자가 됐다. <국민일보> 등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진 전 장관은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연계하는 청와대의 기초연금법 방침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면담을 신청했다가 청와대 비서실에서 거절당하자 사퇴를 결심했다고 한다. 진 전 장관의 면담 거부에는 세간에 ‘부통령’으로도 불리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개입됐다는 여권 관계자의 말도 나온다. 더욱이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이 진 전 장관을 배제한 채 복지부 내 기초연금 정책을 담당하는 실·국에 직접 지시해 최종안을 만들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 두 사례는 박근혜 정부의 복지정책 결정 과정의 현주소를 날것 그대로 드러내준다는 면에서 의미심장하다. 동시에 기초연금과 4대 중증질환 등 박근혜 정부의 복지공약이 후퇴하게 된 결정적이면서도 본질적인 요인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복지정책 결정 과정은 복지정책 공약이나 아이디어가 법으로 최종 성안되기까지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복지정치적 요소다. 그 과정이 얼마나 민주적이냐, 누가 최종 결정자이며 그(그들)의 생각과 태도는 어떠한가 등의 요소는 정책 방향과 내용을 정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동한다. 위의 두 사례는 박근혜 정부의 복지정책 결정 과정이 재원의 실질적 부담자인 시민들의 민의 수렴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해관계단체나 지방자치단체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 주무부처 책임자인 복지부 장관조차 최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된 ‘배제와 불통의 과정’이었음을 극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대통령과 경제관료 등 핵심 정책결정자들의 전도된 복지재정관에도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증세 없는 복지”나 “복지 지출 하다 나라살림 거덜난다”는 식의 모순되거나 본말이 전도된 ‘재정의 덫에 빠진 복지관’ 말이다. 민주적이고 참여적인 정책 결정과 진정성 있는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복지개혁은 후퇴와 실패를 내장하고 있을 뿐이다.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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