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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80년대 낡은 프레임’의 격돌 / 김보근

등록 2013-09-01 19:14수정 2013-09-01 22:07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이 통치하던 어두운 1980년대가 부활한 것 같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연루된 소위 ‘내란음모 사건’을 통해 우리는 ‘투쟁과 탄압’, ‘혁명과 조작’이 날카롭게 맞섰던 그 시대를 다시 경험한다. 무엇보다, 이 사건의 두 행위 주체인 국가정보원과 통합진보당 일부 당원들의 인식 수준이 어두운 그 시절로부터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석기 녹취록’ 등 드러난 사실로 볼 때, 국정원은 사안을 부풀려 국면을 전환해온 낡은 수법을 또 동원했다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 국정원은 5월12일 열린 진보당원들의 시국강연과 토론 내용에 ‘내란음모’라는 어마어마한 딱지를 붙였다. 하지만 빈 구멍들이 적지 않게 보인다.

 그 ‘녹취록 요약본’에 문제성 발언들이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30여명이 참석한 토론회에서 문제성 발언을 한 주체는 몇 사람에 국한된다. 이석기 의원의 강연 뒤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했을 많은 발언들은 빠져 있다. 아마도 그 발언들이 ‘내란음모’와는 동떨어진 내용이었기 때문에 빼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성 발언에 대해선 그에 합당한 대응을 하면 된다. 그런데 국정원은 ‘내란음모’라는 무시무시한 칼을 꺼내들었다. 국정원 개혁이라는 뭇매를 피하려는 의도가 이런 무리수를 낳았을 것이다. 30년 전 전두환 시대에 횡행한 ‘과장과 조작’과 상당히 닮아 있다.

 더욱이 국정원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80년대식 공작수사를 벌였을 개연성도 높다. 이상규 진보당 의원은 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사건은 국정원이 거액으로 매수해 수년간 사찰해온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국정원이 큰 도박빚을 지고 있는 진보당 당원에게 “가족 전체가 해외로 나가서 평생 살 수 있을 만한” 거액을 제시해 매수했다는 것이다. 사실이라면 역시 전두환 시절에나 통용됐을 공작의 냄새가 짙게 난다.

 하지만 일부 진보당 당원들의 발언은, 이들 역시 전두환 시대의 낡은 프레임에 갇혀 있음을 보여준다. 그 낡은 프레임이 한반도 평화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낳게 한다. 한반도에 ‘적’이 있다면 그것은 남북을 막론하고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일 것이다. 하지만 녹취록에 드러난 일부의 발언에는 북한을 칭찬하고, 미국과 남한 정부를 적대시하는 것 같은 내용들이 담겨 있다. 따라서 극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국정원과 진보당 일부 인사들은, 사실은 심각한 ‘인식 프레임 지체’라는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중요한 점은, 이들을 1980년대가 아니라 ‘2013년 오늘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 살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정원에 대해서는 개혁이 그 열쇠다. 그것이 낡은 공작이 횡행하는 조직에서 벗어나, 진정 국익에 도움이 되는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길이다. 여야가 합심해 국정원 개혁을 조그마한 후퇴도 없이 처리해나가야 하는 이유다.

 진보당 내부의 ‘낡은 인식 프레임’에 갇혀 있는 일부 인사들을 2013년 현재로 이끌어오는 해법은 진보당의 성공적인 의회 활동에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1980년대 ‘혁명 활동가’였던 이석기 의원이 의회에 안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것이 바로 ‘2013년 발전 프레임’이 ‘80년대 혁명 프레임’을 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낡은 인식 프레임을 바꾸어낼 주역이어야 할 이석기 의원이, 오히려 낡은 인식 프레임을 대표하는 사건에 핵심으로 지목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2013년 여름 한국 사회를 덮친 이 진통이 우리 사회 일각에 남아 있는 ‘80년대’를 벗어나는 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H6s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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