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설국열차>는 여러 가지로 한국 영화 관객을 설레게 했다. 430억원이라는 한국 영화 사상 가장 큰 예산으로 만드는 할리우드산 블록버스터(물론 할리우드에서 보면 중저가 제작비에 불과하지만). 167개국 선판매. 크리스 에번스, 존 허트, 틸다 스윈턴 등 쟁쟁한 배우들. 프랑스 만화 원작을 새롭게 버무린 시나리오.
영화를 비평할 능력이 없는 필자지만 한 사람 관객으로서 느낌은 이랬다. 지구온난화 문제를 지구적 수준에서 그리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립을 잘 버무린 연출은 탁월했다. 멈추지 않는 기차로서 근대의 과학기술, 홀로코스트로 상징되는 국가 폭력의 정점에 대한 비유적 비판 등은 한국 영화의 수준을 보여주는 듯해서 기분이 좋았다. 봉준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 영화 속 세계는 사람들이 타고 있는 특별한 열차 안이지만 그 안의 싸움이나 유혹은 우리 삶과 비슷하다.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것이다. 단순하다. 바로 구조다. 비행기에서 12시간 동안 이코노미석에 앉아 있다가 내리면서 비즈니스 클래스나 퍼스트 클래스석을 지나갈 때 느끼는 그 느낌이다. 매일매일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이다.” “사람은 섬에 혼자 살지 않는 한 언제나 어떤 시스템 안에 속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자신이 시스템에 어울리길 원하고 사랑받기를 원하지만 시스템을 아예 뒤엎고 싶어하기도 한다.”
이런 주제의식과 연출에 대해 뉴욕대학 영화과 최정봉 교수는 <설국열차>를 ‘봉찬욱(봉준호 연출, 박찬욱 기획)표 좌완 블록버스터’라고 정리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늘 오른쪽에 서는데 멀고 조그만 나라에서 온 감독이 왼쪽에 선 블록버스터를 만들었다고.
영화는 잘 봤는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 계속 남았다. 모자라는 2퍼센트는 과학적 설득력의 부족이 아닌가 싶다. 첫째,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살포한 CW(Control Weather)-7이 지구 전체를 얼린다는 부분. 근대 과학기술의 부작용으로 나타난 지구온난화를 또 다른 기술로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 과학 맹신에 대한 봉준호의 비판(괴물 이후 계속되는)은 명확하다. 그러나 역시 조금 더 정교했으면 어땠을까. 과학자와 정책 결정자들이 지구 성층권에 CW-7을 살포하는 결정을 둘러싸고 벌이는 과학과 정치 사이의 논란을 짧게라도 보여줬으면 설득력이 더 생기지 않았을까.
둘째, 멈추지 않는 설국열차의 엔진. 현재로서 에너지의 공급 없이 계속 돌아가는 엔진은 불가능하다. 신성한 엔진을 신화화하면서도(봉 감독의 근대 과학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이겠지만), 동시에 현재의 과학으로 볼 때 가능한 에너지원에 대한 근거를 제공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 우주에 대형 태양전지판을 설치하고 그 전기에너지를 무선으로 지구로 전송한다는(아직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한다) 정도의 기술 가능성 정도는 첨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셋째, 식량과 물 문제. 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 덩어리와 스테이크와 스시의 대비가 극명하기는 했지만, 지구 전체가 얼어붙은 상태에서 달리는 기차에서 어떤 에너지를 이용해 식량 생산을 계속할 수 있는지?
영화, 소설, 드라마, 만화 모두 허구를 통해 진실에 다가가는 예술이다. 허구의 이야기에 과학을 요구하는 것은 타당한가. 나는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가장 세밀한 부분까지 정교하게 맞아떨어지는 현실성 위에서 허구적 이야기는 진실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을 비판하는 이야기는 더욱더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다.
<해운대> 이후 계속되는 재난 블록버스터들이 상당히 흥행에서 성공적이지만,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과학기술에 대한 치밀한 설정을 보태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전문적 지식과 취재에 기반한 장르들이라 할 수 있는 범죄수사물, 법정 스릴러 등 다양한 서사들도 개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한류 콘텐츠를 세계화하는 데도 관건이 될 것이다. 사람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 감성에 대한 예민한 촉각을 갖춘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들이 현실과 상황에 대한 엄밀한 분석, 분석에 기반한 추론과 전개, 과학을 갖춘 상상력을 보탤 때 비로소 세계적 문화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연재강명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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