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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막장으로 간 지도자들

등록 2013-08-28 18:59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카를로 마리아 치폴라는 특이한 재능을 가진 이탈리아 출신 경제사가다. 그의 책은 흥미롭긴 하지만 별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에피소드들로 엮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이 모이면 거대한 사회상의 완만하나 도도한 변천을 시사한다. 근자에 번역 출간된 <중세 유럽의 상인들>이 그런 특징을 잘 드러낸다.

14세기에 유럽 금융계를 장악했던 피렌체의 바르디 가문은 백년전쟁 당시 영국 왕에게 거액을 빌려줬다가 날린 뒤 파산했다. 여전히 영향력은 행사했지만 위기에 몰린 그들은 무법자가 되어 난국을 타개하려 했다. 그들은 별 가치가 없고 산적으로 들끓던 산악 지역을 사들였다. 산적을 제거할 때까지 사람들은 그들이 그곳을 안정적으로 통치하려는 것으로 착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더 큰 산적이 되어 그 지역의 약탈권을 독점했다. 게다가 그들은 위조화폐를 만들어 위기에서 벗어나려 했다.

17세기에는 프랑스 정부에서 찍은 동전 루이지노가 터키인들의 마음을 홀려, 그 동전이 장신구로 사용되며 가격이 폭등했다. 그러자 제노바의 상인들이 사기를 벌였다. 이득을 얻는다면 어디에서 무슨 일이라도 했던 그들이 질이 떨어지는 루이지노를 만들어 터키에 팔며 부당이득을 취한 것이다. 결국 프랑스와 이탈리아와 터키 사이의 국제적 공신력이 쟁점으로 부각되며 그 시도는 막을 내렸다.

18세기에는 상인을 위한 경제 입문서가 프랑스의 상인 가족에 의해 발간되었다. 치폴라에 따르면 도덕 교과서의 색채까지 띤 그 책은 경제활동에서 부정행위를 방지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이 세 일화는 사실상 상인들의 위상 변화를 암시한다. 무법자에 사기꾼이었던 중세의 상인들이 시간이 흐르며 규범을 확립하고 사회적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려고 4대강 사업으로 국토를 거덜 낸 우리의 지도자들에게 과연 정신이라는 실체가 있다면 그것은 몇 세기쯤에 속하는 상태일까?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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