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아시아 시대는 이제 우리에게 더는 새로운 인식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는 아시아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중국의 부상 이후 지난 20여년간 대학에서 필자가 겪은 두 가지 일화를 소개한다.
일화 하나. 1997년 봄에 싱가포르국립대 동남아연구소가 아시아 지역의 학자를 초청해서 회의를 열었다. 회의의 목적은 이러했다. 연구소가 생긴 이래 유럽과 미국의 동남아시아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저술들은 대부분 검토했다. 그들을 석좌교수로 직접 모시기도 했고, 세미나와 콘퍼런스에 초청해서 무엇을 어떻게 훌륭하게 연구했는지를 이제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이미 이 연구소는 미국과 유럽의 아시아 연구자들의 저서를 500권 넘게 출판한 상태였다.) 이제 영어로 말하지 못하는 동남아 지역에서 연구해온 지역 연구자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동북아시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영어로 말하지 못하는 지역 연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공유할 것인가.” 이게 회의의 목적이었다.
일화 둘. 2001년 여름으로 기억한다. 필자가 지도했던 중국 유학생의 이야기 한토막. 서울대에서 석사를 마치면 한국과 중국을 연결하는 언론사에서 기자를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진 학생이었다. 대단히 성실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조금 모자라는 한국어도 열심히 공부해서 석사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졸업을 앞두고 필자 연구실에 들러서 인사를 하면서 유학에 대한 소감을 한마디 했다. “저는 한국 언론에 대해 많이 배워서 중국 언론, 혹은 중국과 한국을 연결하는 언론사에서 일하는 데 도움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원 2년간 미국 언론과 미국 저널리즘 이론에 대해 많은 배움을 얻었습니다.”
이 두 가지 일화는 아시아 시대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고, 우선해야 할 작업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준비는 어떤 상태일까. 지난 10여년간 대학의 세계적 경쟁력을 키운다는 이름으로 국제적 저널에 실린 논문 편수를 늘리기에 바빴다. 영어로 발행되는 (대부분 미국) 저널에 많은 논문을 게재하는 ‘석학’ 연구자들도 많이 생겼고, 서울대학교도 논문 수에서 50위 안에 드는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에서 연구하는 아시아, 아시아의 시각에서 아시아를 바라보는 연구는 ‘세계적’인 영어저널에 잘 실리지 않는다. 미국의 주류 이론과 문제의식을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의 문제의식이 반영된 (보편이론의 이름으로) 논문들을 한국의 연구자들이 생산하고 있고,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이 연구들을 세계적인 연구성과로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인도와 중동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몇 명 되지도 않거니와 교수시장에서 찬밥신세를 여전히 면치 못하고 있다.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의 경우 140여명의 교수 중에 중국 연구자는 3명, 동남아는 2명뿐이고, 인도와 중동은 가르칠 교수가 없다. 석사를 졸업하면 좋은 학생들은 모두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면 교수시장에서 2류 취급을 받는 걸 모두 잘 알기 때문이다.
참고로 싱가포르국립대 아시아연구소는 1년 예산이 50억원이 넘고, 전세계 아시아 연구자들을 조건 없이 매년 20여명씩 초청해서 2년간 최고 수준의 지원을 해준다. 일본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는 산하에 7개의 학과를 설치하고 소속 교수가 40명이 넘는다. 1941년 설립한 이래 중국 고전 수집과 인도·중동에 대한 연구를 주도해왔다. 최근 아시아 시대에 대비해 사회과학적 아시아 연구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교수를 계속 충원하고 있다.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지원은 부끄럽기 이를 데 없다. 아시아 지역을 연구하는 젊은 박사 연구자는 수도 적을 뿐만 아니라 모두 1년짜리 계약직, 연봉 3000만원의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인도네시아·인도를 연구해서는 먹고살기도 어렵다.
1997년에 영어로 말하지 않는 학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던 싱가포르대학. 한국과 중국의 교역량이 미국·일본을 합친 규모보다 큰데, 중국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교수와 학문후속세대는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는 서울대. 이렇게 우리는 아시아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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