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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북의 성장률이 남을 앞서는 날 / 김보근

등록 2013-08-11 18:14수정 2013-08-11 20:50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2007년 평양에 갔을 때다. 묵고 있던 양각도호텔 상점에서 물건을 산 뒤 50유로 지폐를 냈다. 거스름돈으로 유로·달러·위안화 동전을 수북이 받았다. 20대 여성 복무원이 이 3가지 외화의 환율을 검토하면서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린 결과다. 여성 복무원의 품새가 이미 이런 일에 익숙해 보였다. 그 재빠른 계산 능력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2002년 처음 평양을 방문했을 때 호텔 상점의 모습은 많이 달랐다. 그때는 50달러 지폐를 내면 달러로만 거스름돈을 내주었다. 거스름돈이 부족한 경우도 잦았다. 복무원들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 얼른 부족한 거스름돈에 해당하는 자잘한 물품을 집어들었다. 불과 5년 사이에 북한 호텔의 외화 유통 사정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단절된 남북관계 탓에 그 뒤 평양에 가본 적은 없다. 그러나 이석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이 집필한 <북한 외화통용 실태 분석>(산업연구원 펴냄, 2012)을 보면, 북한에서의 외화 사용이 이제는 호텔 등을 넘어 일반인들에게까지 확대된 모양이다. 2009년 시행된 ‘몰수형 화폐개혁’ 이후 외화 선호 경향이 크게 늘었는데, 특히 위안화의 확대가 눈에 띈다고 한다. 북-중 무역 확대 등으로 위안이 국경지대뿐만 아니라, 평양 시민들 사이에서도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외화통용…>은 중국 랴오닝성 금융학회 내부자료도 소개하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06년의 경우 중국 단둥에서 북한으로 들어간 위안화가 그 전해에 비해 31.4% 늘었다. 금융학회는 이 위안화 중 88.6%가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다고 분석했다. 나머지는 북한 내부에 남은 것이다. 일부는 ‘자본’ 구실도 할 것이다.

이런 북한 내 외화 사용 확대는 북한 경제에 긍정과 부정의 영향을 함께 주겠지만, 북한의 경제성장률에 초점을 맞추면 긍정적 측면이 강할 것이다. 북한의 경우, 인적자본과 지하자원 등이 비교적 잘 갖추어진 상태에서 극단적인 ‘자본 부족’이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북한 내 외화가 ‘자본’ 구실을 함으로써 경제성장의 한 동력이 될 수 있다.

7월12일 한국은행은 2012년 북한의 실질경제성장률을 1.3%로 추정했다. 같은해 남한의 실질경제성장률은 2%였다. 남한은 성장률이 하강하는 추세다. 점차 우리 경제가 선진국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북한 경제는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몇년간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이다 2000년대 들어 들쑥날쑥한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무역 및 외화유통 확대를 근거로 살펴보면 앞으로 상승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앞으로 10년쯤 뒤 북의 성장률이 남을 앞서는 날이 올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오는 14일 열리는 제7차 개성공단 실무회담은 개성공단의 운명을 결정지을 회담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6차 회담의 과정과 결과를 보면, 북한은 남한에 ‘머리를 숙이는’ 정도의 성의를 보였다. 7차 회담에서 남한이 이런 북한의 성의를 인정하면 개성공단은 살아날 것이다. 이 경우 ‘북한의 성장률이 남을 앞설 때’ 남북이 함께 그 열매를 향유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남한 당국이 이에 만족하지 않고 북한에 ‘무릎을 꿇으라’고 강요한다면 개성공단의 앞날에는 더욱 짙은 먹구름이 낄 것이다. 아마 북한의 경제성장률이 높아질 때 함께 웃는 나라들 중 남한을 찾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10년 뒤 한반도에서 남북이 함께 웃을 수 있을지 여부는 이제 오롯이 남한 정부의 마지막 협상 태도에 달린 듯하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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