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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사과의 힘

등록 2013-08-07 19:12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마르셀 프루스트는 젊었을 적에 절제 없는 삶을 살았다. 좋지만은 않은 여러 이유로 유명세를 치른 여인들의 살롱에 드나들며 연인을 만들었고, 만나는 여성들에게 적지 않은 돈을 들이며 꽃 선물도 했다. 살롱에서 아나톨 프랑스를 알게 되기도 했고, 음악가 조르주 비제의 미망인 스트로스 부인의 살롱에도 출입했다. 그런 이유로 젊은 날의 프루스트는 세속적 환락과 신분 상승을 추구하는 속물이라는 악평을 얻었다.

그것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 권인 <스완네 집 쪽으로>를 탈고한 뒤 출판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했다. 유수의 출판사에서 한낱 속물에게 선뜻 호의를 보일 일은 없었다. 여러 곳에서 출판을 거절했다. 프루스트가 원고를 보낸 곳 중의 하나는 <신 프랑스 평론>이었다. 그곳의 편집자 앙드레 지드도 작품을 건성 읽고 거절했다. 프루스트는 그라세 출판사에서 자비로 출판할 수밖에 없었다.

발간 이후 독자와 평단의 좋은 반응이 이어졌다. 작품을 정성스레 다시 읽은 지드는 감동을 받았다. 그는 즉시 사과의 편지를 보냈다. “며칠 동안 저는 당신의 책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거절한 일은 <신 프랑스 평론>이 범한 가장 심각한 실수이며, 거기에 큰 책임이 있는 제게 그 실수는 가장 쓰라리고 후회가 되는 여한으로 남을 것입니다.” 프루스트를 속물로 봤다는 것을 사과하며 지드는 그에게 특이한 애정과 존경으로 강하게 흡인되고 있다고 고백했다.

1차 대전이 발발하며 그라세 출판사가 문을 닫기도 했지만, 결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제2권부터 <신 프랑스 평론>의 모회사인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진심 어린 사과가 빗나갈 운명의 두 영혼을 맺어준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도 특히 정치권에서는 저지른 잘못에 대한 충심의 사과를 찾아보기 어렵다. 나는 뉘우치고 사과하는 사람에게서 패배자가 아니라 대인의 풍모를 본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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