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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록 2013-07-31 19:07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의지가 아닌 감각적 경험이 기억을 선명하게 상기시킨다. 작중의 화자, 곧 작가는 일곱 권짜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초두에서 마들렌 과자 부스러기가 섞인 차 한 모금이 입천장에 닿는 순간부터 작중의 고향 콩브레의 일요일 아침을 회상한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현재의 감각으로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림으로써 이 대작의 중심 주제를 부각시킨다.

어렸을 적부터 병약하고 섬세했던 프루스트는 상실과 배제의 감정을 예민하게 느꼈다. 사랑하던 이들의 애정과 우정을 잃고, 죽음으로 그들을 떠나보내는 고통은 이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묘사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20세기 최고의 걸작으로 꼽는 이유는 그 고통의 묘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극할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사실에 있다. 그 가능성은 기억이 갖는 치유와 구원의 효능은 물론 그것을 정제하여 표현하는 예술의 힘으로부터 온다.

‘되찾은 시간’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소설의 마지막 권에서 화자는 마들렌 과자의 경우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 보도에 깔린 돌을 보며 또다시 무의식적인 기억을 상기하는 것이다. 그는 그 의미를 깨닫는다. 현재의 감각을 통해 과거를 접촉함으로써 그는 시간의 외부에서 자신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사물들의 참된 관계를 알아채게 되며, 그 깨달음을 글로 표현하겠다고 결심한다.

그것은 프루스트가 존경해 마지않던 존 러스킨의 예술관을 실천에 옮긴 순간이기도 하다. 러스킨에게 예술가의 임무란 자연의 외관을 직시하여 그 본질을 추출한 뒤 작품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다. 예술 작품은 사라진 것을 다시 포착하여 파멸로부터 구원한다. 그렇게 예술은 파멸적인 시간의 힘에 대해 승리를 거둔다. 프루스트의 대작은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칫 망각에 빠질 과거를 인간의 기억이 회상함으로써 구원한다는 주제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다.

단지 속 한 줌의 재로 바뀐 누님을 그리며….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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