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로컬푸드 1번지의 선물 / 이현숙

등록 2013-07-28 18:21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1년 만에 로컬푸드 1번지 전북 완주군을 다시 찾았다. 직거래 농산물 매장 용진농협은 그때만 해도 문을 연 지 석달밖에 안 됐다. 지역 농민들이 새벽녘 밭에서 딴 채소를 직접 포장하고 가격을 매겨 매장에 진열해 놓는 방식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생산자가 자신의 얼굴을 걸고 소비자를 만나는 곳이었다.

1년 새 완주에는 이런 직거래 매장이 3곳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문을 연 매장 두 곳은 하루 2000만원의 매출을 거뜬히 올리고 있었다. 최소 1년은 적자가 불가피하리란 예상과 달리 한달 만에 수지를 맞췄다. 매장과 더불어 지역의 제철 먹을거리를 직접 공급하는 꾸러미사업의 회원도 3년 만에 10배 늘어 1500가구에 이른다. 기존 상업농이 아닌 소농·고령농이 다품종 소량생산을 해 거둔 성과라 의미가 더 크다.

전주 효자동 완주로컬푸드 직거래 매장에는 판매물품마다 생산자의 사진이 붙어 있다. 80살이 넘어 보이는 어르신이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만들어 활짝 웃고 있다. 260㎡(약 80평)의 매장 곳곳에 붙어 있는 사진 속 생산자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웃음꽃이 피었다. 직거래 매장을 찾은 지역 주민들도 신선한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어서인지 표정이 밝다. 현재 완주군 8800농가 중 800농가가 직거래에서 벌어들이는 소득으로 생활한다. 직거래에 참여하는 농부의 10명 가운데 7명은 60살 넘는 어르신이다.

지역 농산물을 사용하는 농가레스토랑도 3곳이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시골에서 고급식당이 잘될까 주위에서도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직거래 매장처럼 기대 이상으로 성업중이다. 외지인들은 물론이고 지역 주민들도 꽤 이용한다. 안정적인 농가소득으로 주민들의 삶에 여유가 생겼다.

완주군의 로컬푸드 실험이 시작된 지 7년 만에 일궈낸 변화다. 군은 2006년부터 6000여 가족 소농이 생계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해결책으로 로컬푸드를 추진했다. 처음에는 주민들이 선뜻 따르지 않았다. 군수가 나서 농가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를 만들어 주민들을 꾸준히 교육하고 활동을 지원했다. 몇 가지 시도는 실패하기도 했다. 하지만 투자라고 생각하고 멀리 내다보며 멈추지 않았다. 무엇보다 마을 공동체를 살려 생산조직을 만들어 가는 데 힘을 쏟았다. 어르신들·귀농자들을 참여시켜 공동농장을 꾸렸다. 마을회사, 로컬푸드 작목반을 만들어 생산공동체를 키웠다.

요즘 완주군에는 탐방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완주군의 성공 사례를 배우려는 발길이다. 완주군의 실험은 작지만 구체적으로 손에 쥐어지는 성공 사례다. ‘우리도 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주는 선물인 셈이다.

완주군의 성공을 좇아 실험을 하는 지역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성과를 내고 있는 곳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 대개 직거래 매장 등 하드웨어부터 갖춰 단기간에 성과를 기대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하드웨어가 제대로 돌아가게 만드는 공동체라는 소프트웨어다. 생산자끼리, 또 소비자와 함께 로컬푸드의 가치를 공유하면서 신뢰와 연대감을 갖는 공동체가 만들어질 때 비로소 성과가 난다.

공동체를 살려 지역에서 순환하는 경제를 일궈낸 완주군은 연구하고 배울 만한 사례다. 외자유치로도, 대규모 토목사업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주민들의 삶의 고민을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작은 민주주의, 생활민주주의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지역 살리기를 고민하는 많은 지자체의 지도자들이 완주군의 경험을 활용하길 기대한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hsle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새누리당은 ‘윤상현당’?…대표보다 힘센 ‘실세’
[화보] 서울광장 가득 메운 촛불…“국정원 대선 개입 책임자 처벌하라”
껄끄러운 축구 한-일전…‘홍명보호’ 오늘 밤 첫골 터질까
중국 시골 마을에 짝퉁 천안문…‘진짜 같은 가짜’ 보러 관광객 몰려
[화보] ‘정전협정 60주년’ 맞은 평양에선 지금…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이러다 다음 전쟁터는 한반도가 된다 1.

이러다 다음 전쟁터는 한반도가 된다

다시 전쟁이 나면, 두 번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연철 칼럼] 2.

다시 전쟁이 나면, 두 번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연철 칼럼]

이미 예견됐던 ‘채식주의자’ 폐기 [한겨레 프리즘] 3.

이미 예견됐던 ‘채식주의자’ 폐기 [한겨레 프리즘]

북 파병에 ‘강경 일변도’ 윤 정부…국익 전략은 있나 4.

북 파병에 ‘강경 일변도’ 윤 정부…국익 전략은 있나

훌륭한 대통령만 역사를 진전시키는 것은 아니다 5.

훌륭한 대통령만 역사를 진전시키는 것은 아니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