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
개성공단에 가본 사람은 실감한다. 북쪽 땅이 얼마나 가까운지를. 개성공단은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5㎞ 남짓 떨어져 있다. 서울에서는 60㎞,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다. 북쪽은 공단을 만들면서 개성 지역에 주둔하던 2군단 주력 부대와 군사기지를 후방으로 이동시켰다고 한다. 공단 홈페이지에서 밝히고 있듯이 개성공단은 ‘한반도 평화 특구’다. 개성공단이 닫히면 남북의 미래가 닫힌다. 이 개성공단이 빈사 상태에 있다. 남북 당국의 실무회담이 거듭되고 있지만 논의는 겉돈다. 여기에는 북쪽만큼이나 남쪽 정부에 책임이 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은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물론 몇 가지 특징은 드러난다. 첫째는 철저한 대북 불신이다. 박 대통령은 얼마 전 언론사 논설실장 초청 오찬에서 “지금은 기본적인 신뢰를 쌓는 데도 아주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개성공단 실무회담은 낮에만 한다. 박 대통령이 협상팀의 안전을 위해 ‘해 떨어진 다음에 북한에 머물지 마라’는 지침에 내렸다고 한다. 2차 회담 이후 실무회담 단장이 전격 교체됐다. 북쪽에 강단 있게 맞서지 못한 게 그 이유로 거론된다.
둘째는 몰역사적 태도다. 무엇보다 1998년 금강산 관광 시작으로부터 2007년 10·4정상선언에 이르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을 의도적으로 탈락시킨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최근 “지난 60년 동안의 긴 분단과 적대의 세월을 생각해보면 남북 관계가 하루아침에 좋아진다는 자체가 이상한 것”이라고 했다. 남북 관계가 극도로 나빠진 것은 이명박 정권 이후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권의 잘잘못은 말하지 않는다. ‘긴 분단과 적대의 세월’이라는 말은 아전인수의 수사다.
셋째는 중국에 대한 지나친 기대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얼마 전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북-중 관계와 관련해 “북한이 완충지대로 가치가 있기보다는 전략적인 부채가 되고 있다는 과거 학자층 일부의 인식이 아제는 중국 지도층까지 올라가고 있다”고 했다. 그간 북쪽 편이던 중국이 이제는 남쪽 편까지는 아니더라도 중립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중국역할론’은 불편한 남북 관계를 합리화하는 수단이 된다. 여러 정부 관계자들은 북쪽이 대화 공세를 펴는 것도 중국의 압력으로 해석한다.
지금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하는 세력은 크게 둘로 나뉜다. 첫째는 대결을 선호하는 냉전세력이다. 이들은 북쪽은 근본적으로 믿을 수 없는 존재이므로 대화는 소용없으며 개성공단은 빨리 폐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전 정권 때 ‘아스팔트 보수’로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새로운 색깔론인 ‘종북 좌파론’을 주도적으로 퍼뜨렸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을 무단 공개한 ‘남재준 국정원’의 행태는 이들과 일치한다. 둘째는 북쪽을 믿을 수는 없지만 큰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잘 관리할 필요는 있다고 보는 보수세력이다. 이들은 이념적이라기보다 현실적이어서, 상황에 따라 강경과 대화 사이에서 왔다갔다한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이 애초부터 대결·강경을 지향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권 초기 촛불집회 이후 아스팔트 보수 쪽으로 기울면서 남북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다. 특히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문을 계기로 북쪽은 집요하게 대화를 요구했으나 이명박 정권은 거부했다. 그 배경에는 북쪽 정권의 붕괴가 멀지 않았다는 북한붕괴론이 있었다. 북쪽은 결국 노선을 전환했고 다음해에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터졌다.
박근혜 정부도 비슷한 길을 갈 조짐을 보인다. 지금의 정책 기조는 대결과 강경의 중간에 걸쳐져 있다. ‘시간은 우리편이다’라는 게 대북 인식의 기초다. 북쪽은 정책 기조는 융통성이 떨어진다. 대화를 요구할 때는 굴욕도 감수하지만 대결 국면에서는 무모하게 밀어붙인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 개성공단 폐쇄다. 북쪽은 대화 공세가 효과가 없다고 판단하면 돌아설 것이다. 특히 8월에는 한-미 군사훈련이 있다.
박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자신의 말대로 ‘개성공단 문제는 남북 관계의 시금석’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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