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후고 그로티우스는 철학, 신학, 종교, 역사, 문학에 족적을 남겼지만 본질적으로는 국제법에 불후의 저서를 남긴 학자로 기억된다. 그 모든 업적이 강요된 망명의 상태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17세기 초에 개신교 국가인 네덜란드에서 거대한 종교 논쟁이 벌어졌다. 신이 선택한 소수의 구원만이 태초부터 예정되어 있다는 존 캘빈의 전통적인 가르침에 반대하는 자들이 나타났다. 아르미니우스의 교리를 따르던 그들은 인간의 구원에 결정적인 요인이란 신의 명령이 아니라 개인의 믿음이라고 강조하며, 신은 믿음의 조건을 충족시키면 누구라도 선택하리라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20년 이상을 끌며 국가를 내란의 상태로 몰고 갔다. 아르미니우스를 추종하던 그로티우스도 이 논쟁에 연루되어 종신 가택 연금의 형을 받았다. 그는 아내와 하녀의 도움을 받아 책 상자 속에 숨어서 파리로 도주했다.
<전쟁과 평화의 법>은 그런 상황에서 탄생했다. ‘30년 전쟁’이 막바지에 달하며 유럽 열강은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다면 그 어떤 방법이라도 용인하는 정도가 아니라 경쟁적으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국가들 사이의 전쟁이 필연적인 상황에서 그로티우스는 평화에 기초를 둔 국제 관계를 정립시킬 수 있는 대안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는 전쟁을 벌여야 할 정당한 원인을 규정했고, 전쟁 중에도 지켜야 할 정당한 규칙을 나열했다.
네덜란드에서 아르미니우스 추종자들에게 관용을 베풀어 귀국을 허용했다. 하나 그로티우스는 사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면이란 유죄의 인정을 전제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계속 망명객으로 남아 있었다. 그를 다룬 한 전기에는 “네덜란드의 기적”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망명객을 관대히 다루던 네덜란드에서 쫓겨난 자가 이룬 업적에 대한 정당한 평가다.
전쟁의 상황이라도 지켜야 할 법도가 있다는 그의 가르침을 집권당이 이해할까? 이해한다면 그야말로 ‘한국의 기적’일 것이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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