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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혜정 칼럼] 밀양 문제로 프랙털 시대를 풀자!

등록 2013-07-16 18:32수정 2013-07-16 18:34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지난 7일,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있었던 아시아나기 착륙 사고 이후 며칠간, 모든 언론은 그 소식을 전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사망자 중 한국 국적을 가진 이는 몇인지, 기장 책임이었는지, 항공사가 들어둔 보험과 피해자가 받을 보상금은 얼마인지, 활주로로 튕겨나간 두 승무원 중 경력 2년차 타이 승무원은 의식불명 상태인데 경력 18년차 한국 승무원은 다리 골절상만 입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즈음 국내에서는 국민의 안전과 관련된 중대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765㎸ 초대형 송전선로 건설을 두고 8년째 표류하고 있던 밀양 송전탑 국책 사업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주민과 한전의 갈등이 고조된 지난 6월 국회가 나서서 ‘9인의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했고, 그 40일간의 작업을 마무리하여 발표하는 날이 바로 8일이었다. 언론에서는 전문가 협의체가 합의를 보지 못했다는 소식만 간단히 전했다. 사실상 협의체가 합의된 결론을 가져오리라고 기대한 국민들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지속 가능한 삶’의 기반 마련이 시급한 현시점에서 국민들이 밀양 사태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밀양 문제를 제대로 푼다면 우리나라의 에너지 백년대계를 세울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토건업계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4대강 사업 못지않게 무리한 에너지 정책을 펼쳤다. 경제성 계산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수출까지 염두에 둔 원전 사업을 마구 벌여 국민들은 재앙 수준의 사고가 날 위험성과 국가 재정 파탄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국민들은 그간 국가 에너지를 관장해온 전문가들의 수준을 확인하고 싶어졌다. 한국전력(한전)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간부들이 원전 비리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와중이니만큼 한전에서 추천한 전문가 협의체 위원들은 밤낮없이 국내외 자료를 조사하고, 밤샘 토론을 하면서 최상의 ‘전문가 보고서’를 작성했을 것이다. 이제 국민들이 그들의 전문성을 확인할 차례다.

한전에서는 주민과의 이 충돌을 보상금 문제로 축소하려고 하지만, 내가 아는 한 보상금을 위해 목숨 걸고 반대하는 밀양 주민들은 없었다. 이들은 조상의 땅을 지키겠다는 시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하고, 직장이 없어 귀향한 아들네 가족이 자녀를 키우며 고향에서 살아갈 수 있길 바라며, 또는 암 치료 후 정착한 제2의 고향에서 조용하게 살다 가도록 ‘내버려두어 달라’고 말할 뿐이다. 이분들은 나라와 후대를 위해서라면 일정하게 자신의 삶을 희생할 생각이 있는 선량한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이들이 거대한 골리앗 같은 한전과 지금까지 맞서 싸워온 것도 실은 애국심 때문이다. 이분들은 송전탑 건설이 이 땅에서 살아갈 후세대에게 덕 될 것이 하나 없는 사업임을 알기에 반대를 하고 계신 것이다.

국민들은 이제 40일 동안 수고한 전문가들의 얼굴을 보면서 진실을 알고자 하고 에너지 정책이 바로 세워지는 것을 보고 싶어한다. 미국에서는 765㎸ 송전선로 갈등을 ‘공공규제위원회’라는 틀을 통하여 원만하게 해결한 사례가 있다. 후쿠시마 사건이 터진 후 독일 정부의 경우 ‘17인 윤리위원회’ 위원들과 30명의 외부 전문가가 참석하는 대국민 텔레비전 토론회를 열었다. 11시간에 걸친 대토론회에는 시청자들도 이메일과 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적극 참여했고, 그 토론 결과 2021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자는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졌다. 원전을 국책사업으로 선택한 프랑스와, 반대로 재생에너지를 선택한 독일의 선택 중 어느 쪽이 현명한 것인지는 이 두 나라의 국가 안정성과 청년실업률(독일 7.9%, 프랑스 21.8%)만 비교해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밀양 사태로부터 대국민 텔레비전 토론회를 시작하자. 밀양 문제를 풀면 이 땅의 많은 문제들이 풀리게 되어 있다. 우리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실은 같은 원리에 의해 일어나는 ‘프랙털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 토론은 합의에 대한 감각을 되살리는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토론 주관은 이공계 출신이자, 국민의 안전을 가장 우선으로 고려하겠다고 약속한 박근혜 새 대통령이 하시면 좋을 것이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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