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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코뿔소

등록 2013-07-11 19:05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루마니아 태생이지만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외젠 이오네스코는 부조리극을 대표하는 극작가다. 부조리극은 인간의 실존에는 어떤 의미나 목적도 없고 따라서 의사소통을 하려는 시도는 무위로 끝날 뿐이라는 믿음을 바탕에 깔고 있다. 따라서 그런 극에서는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상황이 설정된다.

프랑스 남부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경험이 이오네스코가 그런 성향을 갖도록 만들었다. 강렬하게 푸른 하늘 아래 작열하는 햇빛 속에 회벽 칠을 한 시골 마을을 걸으면서 그는 공중에 떠다니는 듯한 행복감을 맛봤다. 반면 현실 세계는 쇠퇴와 타락과 무의미가 반복되는 일상에 불과했다. 가시적 세계에 대한 혐오감, 의사소통에 대한 불신, 더 좋은 세상은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곳 너머에 있다는 좌절감 등 어렸을 적에 형성된 인식이 그의 후기작에도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코뿔소>라는 희곡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1927년 루마니아에서 결성되었던 극우파 철위단을 풍자하는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경직된 이념에 세뇌되고 동화당하는 민중의 실체에 대한 보편적인 캐리커처라고 봐도 무방하리라.

마을 광장에 코뿔소가 나타나 사람들이 놀란다. 그런데 주인공 베랑제 주변의 인물들이 점차 코뿔소로 바뀐다. 코뿔소를 봤다는 사람들의 말에도 프랑스에서 코뿔소가 나타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하던 보타르도, 지적이고 언변이 유창한 장도 코뿔소가 된다. 장은 코뿔소로 바뀌며 코뿔소도 생명권이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주의는 죽었다. 낡은 감상주의자들만 그 주장을 한다.” 베랑제와 연인 데이지만이 마지막까지 인간으로 남아 있다. 인류를 번식시키는 일을 하자는 제의에 데이지는 베랑제가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코뿔소가 옳다고 말한다. 데이지마저 코뿔소에 합류한 뒤 베랑제는 홀로 남는다.

극중의 부조리를 넘어서는 부조리가 현실인 세상에 살고 있다. 논리도 없는 우격다짐의 주장을 코뿔소들이 떠받드는 형국이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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