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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동걸 칼럼] 회장님 댁의 잘못된 후계 교육

등록 2013-07-07 19:13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손자가 모 국제중학교에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입학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동안 소동이 벌어졌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의 기준이 무엇인지 몰라도 할아버지가 우리나라 최대 재벌 그룹이자 세계적인 기업의 회장님이고 아버지가 부회장이면 됐지 그 아이에게 무슨 사회적 배려가 또 필요하다고 중학교 입시에서 그런 배려까지 한단 말인가. 이건 좀 쩨쩨하고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웃기는 일인데 그래도 부족했는지 성적 조작까지 한 것 같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고는 이건 해도 해도 정말 너무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얼마 전에는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부유층 인사들이 여권 위조를 한 사건이 적발되었는데, 여기에는 전직 대통령과 우리나라 대표 재벌가의 며느리들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그전에도 나쁜 짓을 많이 한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전직이 대통령이란 자라면 스스로는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체통을 지켜야 하는데 그런 자의 며느리가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니 정말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 정말 법과 도덕이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지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다.

성적 조작과 여권 위조는 명백한 범법 행위이니 당사자는 그에 상응하는 죗값을 치러야 마땅할 텐데, 앞으로 결과를 기다려봐야 알겠지만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이 회장님의 손자 건은 유감 표명과 자퇴 정도로 마무리되는 것 같고, 여권 위조 사건도 약식기소 등으로 대충 넘어가는 모양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진짜 걱정되는 것은 이런 범법 행위를 한 부모들이 죗값을 치르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과연 그들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천진난만하기 그지없는 아이들이지만 이 아이들이 잘못 가정교육을 받으면 내일은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지도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무엇이든(더 많은 돈이든, 여자든, 물건이든, 권력이든) 그것을 얻기 위해 무슨 일이든지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회장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다고 걸릴 리도 없겠지만 만약 걸리면 ‘아니면 말고’ 식으로 털어버리면 되니 ‘밑져야 본전’이고 그러니 안 그러면 ‘바보’라고 생각하는 회장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의 부모들이 지금 이런 일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해대고 있는 것도 어찌 보면 그들이 어릴 때부터 그런 식으로 비뚤어진 가정교육을 받았기 때문이고, 바로 그것을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가정교육으로 다시 유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제도는 이 사회에서 불리한 여건에 처한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하여 잠재성은 있지만 환경이 따라주지 않는 아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사회경제적 형평성과 공정성도 제고하기 위한 것이다. 재벌 회장님의 손자가 우리 사회의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로부터 이런 기회마저 빼앗아간다는 것은 ‘갑질’ 중에서도 ‘가장 더러운 갑질’이 아닐 수 없다.

999마지기를 가진 대부농이 천 마지기를 채우기 위해 한 마지기를 가진 빈농을 짓밟고 땅을 빼앗고서는 목표를 달성했다고 좋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하기야 우리는 이미 이런 ‘갑질’을 수없이 봐오지 않았는가. 하청업체 쥐어짜기만으로는 배불리기에 부족했던지 빵집, 순댓집, 떡볶잇집, 자동차 정비업소, 동네 구멍가게, 커피점 등등 주위를 둘러보고 돈 될 것 같기만 하면 무엇이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집어삼키면서 동네 상권을 싹 쓸어버리고, 영세상인들을 말려 죽이는 재벌가 2세들. 자기 아버지가 하는 거대 모그룹의 일감을 싹쓸이해 손쉽게 억만금을 벌어들이면서 중소기업 사업 터전을 말려버린 재벌가 후계자들. 그것을 보고 대견해하는 회장님들.

회장님들이시여, 이제는 법과 규범을 지키면서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모범을 자녀들에게 보이시라. ‘갑질’ 유전자 대신 ‘정정당당 유전자’를 물려주는 올바른 가정교육만이 재벌들도 살고 우리 경제도 사는 길이다. 그것이 진정한 후계 교육이다.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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