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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 칼럼] ‘북한 문제’를 풀기 위한 조건

등록 2013-06-10 19:23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 논설위원
유일 초강국과 떠오르는 대국 사이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이었지만 내용까지 그렇지는 않았다. 미국은 중국이 요구한 ‘신형 대국관계 구축’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여러 현안에서는 오히려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미국은 중국 쪽이 촉구해온 대북 대화의 시작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한은 미-중 정상회담이 시작되기 직전 전격적으로 포괄적인 남북 대화를 제안했다. 내일과 모레 서울에서 열리는 남북 장관급 회담에 이어 이달 하순에는 한-중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동북아 외교대전’이라고 할 상황이다. 과연 ‘북한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북한 문제의 해법은 크게 세 가지 내용을 갖는다. 핵·미사일 문제 해결, 적대성의 해소, 북한 체제의 개혁·개방이 그것이다. 이 셋은 긴밀하게 얽혀 있다. 핵 문제는 최대 현안이지만 적대성의 해소 없이는 풀리지 않는다. 적대성에는 북한과 한국·미국·일본의 관계뿐만 아니라 중국과 미국·일본 사이의 관계도 포함된다. 북한이 동북아에서 안정적인 이웃나라가 되려면 개혁·개방이 반드시 필요하다. 탈북자와 인권 문제, 나아가 북한 체제의 존속 여부도 개혁·개방과 연관된다.

얽히고설킨 북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함께 충족돼야 한다. 첫째는 남북 관계의 발전이다. 남북 관계는 북한이 발을 멀리 내디딜 수 있는 받침대가 된다. 9·19 공동성명 등 과거의 성취들은 그렇게 이뤄졌다. 둘째는 미국의 적극적인 태도다. 미국은 한반도·동북아 지역의 안보 구도에서 최대 주주라고 할 수 있다. 남북 분단에서부터 수십년에 걸친 냉전, 냉전 이후 동맹·대립 관계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미국이 앞에 나서지 않는 한 적대성은 해소되지 않는다. 미국이 지금처럼 한국과 중국에 북한 문제 해결을 떠넘기려 한다면 사태는 더 꼬이게 된다. 셋째는 미국과 중국의 대타협이다. 북한 문제의 해결은 그 이후 세력 구도를 어떻게 짜느냐는 문제와 연결돼 있다. 한반도는 과거 미국과 소련이 분할점령하면서 분단됐다. 당시 소련의 자리에 이제 중국이 서 있다. 미국과 중국이 대립한다면 북한 문제를 풀 동력은 현저히 줄어든다. 북한의 개혁·개방도 미-중 대타협 분위기에서 효과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

세 조건과 관련해 지금 상황은 만족스럽지 않다. 이번 회담에서 미국과 중국은 대타협까지 가지 못했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마지못해 인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미국 안에는 중국 봉쇄를 선호하는 세력이 여전히 존재한다. 남북 관계도 이제 시작일 뿐이다. 북한의 최근 대화 공세에는 나름대로 절실한 배경이 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경제 우선을 부쩍 강조한다. 핵이 주민들의 생활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핵·경제 병진 노선을 내세우지만 당장은 생존과 경제 개선에 방점이 찍혀 있다.

과거 북한 문제 해결에 가장 가까이 갔던 때는 2000년이다. 6·15 공동선언이 채택돼 남북 관계가 빠르게 진전되고, 이런 분위기를 바탕으로 북한과 미국은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체제 수립 등을 논의하려는 상황까지 갔다.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된 것이다. 역풍은 미국 내부에서 나왔다. 새로 집권한 조지 부시 정권은 이전 정부가 이룬 모든 것을 무효화하려 했다. 북한 체제의 붕괴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생각하는 강경파는 지금도 한국과 미국에 존재한다. 이들이 목소리가 커질수록 북한 문제가 악화한 사실을 지난 20년의 경험이 보여준다.

이제 새 출발선에 섰다. 시작은 남북 사이의 신뢰 확보다. 남북 관계는 내실이 뒷받침된다면 멀리까지 갈수록 좋다. 미-중 협력 구도 강화를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중국은 미국의 협력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북한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 더 시급한 일은 미국의 적극적인 태도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전략적 인내 정책은 빨리 폐기돼야 한다.

북한 문제에서 우리의 위치는 특수하다. 가장 직접적인 당사자인데다 관련국들과 두루 잘 소통할 수 있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그만큼 책임이 무겁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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