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구 논설위원실장
‘공공’(公共)이란 말은 우리한테 아주 친숙한 단어다. 공공기관, 공공정책, 공공의료 등 쓰임새도 다양하다. 마치 우리 사회 전반에 공공의 개념이 충만한 듯하다. 하지만 우리가 공공의 본래 의미를 얼마나 구현하며 살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면 영 딴판이다. 공공이란 말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입에 올리지만 실제로 우리는 공공 결핍 사회에 살고 있다.
공(公)부터 살펴보자. 공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사람을 위하거나, 여러 사람에게 관계되는 국가나 사회의 일’이다. 여기에서 공인(公人), 공적(公的)인 삶 등의 말이 나왔다. 공이란 한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면 공인이나 공적인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공은 ‘사사로운 일’과 ‘서로 등지고 있다’는 뜻의 글자가 합해서 이뤄졌다. 즉, 국가나 사회의 일을 하는 공인은 사사로운 일과 등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공인들이 사사로운 자기 이익을 위해 처신하면 그 사회는 질서와 정의가 무너지고 퇴보한다.
이명박 정부가 대표적이었다. 이 대통령처럼 공인의식이 희박한 대통령도 없었다. 그는 대한민국이란 민주공화국을 마치 자신의 사적 전리품처럼 다루었다. 집권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돈 되고 힘 있는 자리’를 자기 패거리한테 나눠주는 것이었다. 국가정보원이나 검찰 등 권력기관을 자신의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도구로 활용하기도 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정치관여와 대선개입 혐의 등으로 구속 직전에 몰려 있는 상황이 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는 지금 공인의식 없는 공인이 사회에 얼마나 해악을 끼치는지를 값비싼 대가를 치르며 배우는 중이다.
정치인뿐이 아니다. ‘영혼 없는 관료’라고 자조하는 공무원들도 큰 차이가 없다. 그들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펴야 하는 대표적인 공인들이다. 그러라고 피 같은 국민 세금으로 봉급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도 국민 편에 서기보다 정권의 비위를 맞추며 승진이나 좋은 보직 등 사사로운 이익을 우선시한다. 사회의 목탁이라는 언론인도 자신이 속한 회사의 이익에 매몰되거나 특정 이념 전파에 경도된 지 오래다. 언론인이 공인이길 포기하면 진실은 왜곡되고 사회는 가치 혼돈 상태에 빠진다.
공(共)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함께한다’는 의미의 공은 공동체 유지의 기본 조건이다. 서로 다른 너와 내가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식이 부족하면 그 사회는 반목과 갈등으로 갈래갈래 찢긴다. 지금 우리 사회가 딱 그 모양이다. 공생이니 상생이니 하는 말들이 난무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갑과 을로 나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지고, 자산가와 빈곤층으로 양분됐다. 더불어 사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를 짓밟고 착취하고 내 삶의 도구로 여기는 듯하다. 지역적, 이념적으로도 함께 살아간다는 의식보다 상대방을 배제하고 내 편만의 세상을 만드는 데 몰두한다.
우리 모두 내 힘으로 홀로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남에게 의존해 살아가는 반쪽짜리 삶이다. 먹고 입는 것에서부터 버스나 지하철로 하는 출퇴근, 직장에서 하는 일 등 모두 남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세계적인 재벌이라도 자본을 투자한 주주와 제품을 생산하는 노동자, 그리고 상품을 구입해 주는 소비자들이 없다면 하루아침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모두 내 삶의 후원자이자 동반자임 셈이다. 이런 공(共)의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나 남양유업 욕설 파문 등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의식이 현실을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순진한 발상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이해관계로 똘똘 뭉친 강고한 기득권층에 공적인 자세를 지키며 약자들과 더불어 살라고 해봤자 쇠귀에 경 읽기다. 탐욕스런 자본의 촘촘한 그물망에 갇혀 있는 천민자본주의 사회이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사회 변화는 의식 변화로부터 시작된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우리의 의식이 진정으로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갑을문화 청산을 떠들어봤자 사상누각이다. 우리는 공(公)과 공(共)을 얼마나 제대로 실천하며 살고 있을까.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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