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역대 대통령 중 복지를 가장 강조한 이는 누굴까? ‘생산적 복지’의 김대중 전 대통령, 복지예산을 획기적으로 늘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둘째가라면 서러울 것이다. 그는 일찍이 복지와 행복이란 단어를 자신의 발언록에 자주 올렸다. 2009년 미국 스탠퍼드대 강연에서는 “경제발전의 최종 목표는 공동체의 행복 공유에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해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는 “여전히 이루지 못한 우리의 궁극적인 꿈은 복지국가”라고도 했다. 말만 한 건 아니었다. 지난 18대 국회에서는 사회보장기본법 전면 개정안을 발의했다. 올해부터 시행된 이 법의 의미는 간단치 않다. 이 법은 사회보장의 의미를 사회보험과 공공부조에서 사회서비스까지 넓혀 법에 명시했다. 대선 과정에서는 ‘맞춤형 고용복지’란 이름으로 기초연금 도입 등 숱한 보건복지 과제를 공약했다.
4일은 박근혜 정부 출범 100일째 되는 날이다. 이날을 맞아 ‘복지’의 시선으로 박근혜 정부 100일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보수 성향 정치인임에도 줄기차게 복지를 강조해온 그의 행보와 대국민 약속이 그를 대통령 자리에 앉도록 한 이유 중 하나란 점에서 그렇다. 따라서 박 대통령 또는 박근혜 정부의 진정성과 의지를 가늠하고 그 성과를 판정하는 잣대 중 하나는 복지성적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100일은 아직 가타부타 무엇을 평하기엔 이른 시간일 수 있다.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5년의 항해는 이미 시작됐고, 적어도 박근혜 복지의 향방, 곧 길을 엿볼 정도는 됐다. 이런 시각에서 떠오른 가장 큰 문제점은 아직도 국민행복을 위한 ‘박근혜 복지’의 길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곳저곳 길닦기에 분주한지는 모르겠지만 정작 ‘한국형 복지국가’란 큰길로 다가설 진입로가 명확하지 않다. ‘박근혜의 맞춤형 고용복지’의 형체는 오히려 대선 전보다 더 희미해졌고, 때로는 어떻게 주조되고 있는지를 도무지 파악할 수 없는 형국이다.
인수위 시절부터 우왕좌왕하던 기초연금 도입 방안은 여태껏 오리무중이며, 무상보육 정책은 지방정부의 예산 부족 등 재원 마련이 핵심인데도, “국정과제를 설정한 주체가 새 정부와 여당임에도 추진 과정에서는 책임을 전가하거나 거의 방관하다시피 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나마 가시화한 게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계획인데, 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간병비 등 이른바 3대 비급여가 사실상 제외된 마당이어서 “공약 파기”란 비난을 받은 지 오래다. 더욱이 숱한 공약과제를 위한 ‘공약가계부’도 구체성 부족으로 현실성에 의문을 받는데다, 국민 부담 등을 협의하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 위원회는 숫제 실종된 듯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진주의료원 사태에서 나타난 방관과 미온적 대응은 정부·여당과 대통령의 복지 의지와 진정성을 의심케 했다. 100년 역사의 공공병원이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일방적 결정으로 폐업에 이르게 된 마당에 한가히 “도민의 뜻”을 운운한 대통령의 언급은 ‘지방의료원, 지역거점 공공병원 활성화’를 공약한 본뜻을 의심케 하고도 남음이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홍 지사의 결정은 대통령이 직접 발의한 사회보장기본법의 취지에도 반한다. 이 법 26조에는 사회보장제도를 신설 또는 변경할 경우에는 보건복지부 장관과 협의하도록 돼 있지만 홍 지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회보장기본법 발의자로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오리무중인 박근혜 복지의 길은 어쩌면 국민적 이슈로 떠오른 진주의료원 해결에서 그 가닥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박근혜 복지의 길은 본질적으로 박 대통령의 길이다.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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