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
지지난주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곧 한-중 정상회담이 열린다. 박근혜 정부 대외정책의 기본 틀을 짜는 중요한 시기다. 반드시 살펴봐야 할 것은 한-미 동맹의 현주소다.
박 대통령은 미국 방문 동안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세 차례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아시아 재균형 정책과 저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 동북아의 평화와 발전을 추구하는 데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것이며…”(7일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 머리발언)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중요한 축이 되고 있다.”(8일 미국 의회 연설)
“이런 구상(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이 지역의 평화와 공동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과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같은 연설)
오바마 정부가 2011년 가을부터 본격화한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Asia) 정책은 크게 세 측면으로 나뉜다. 첫째는 군사력 재배치다. 대규모 미군기지가 있는 한국·일본뿐만 아니라 필리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미얀마,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 등과도 군사협력을 강화한다. 둘째, 지역 차원의 통합된 접근이다. 중국이 배제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밀어붙이고 동아시아 정상회의에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셋째는 미국의 해양 접근권을 서태평양·동아시아와 연계해 인도 등 남아시아 지역 해안까지 확장·강화한다.
톰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 정책의 궁극 목표를 “아태 지역의 규범과 규칙을 형성하는 것을 지원함으로써 미국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 지역의 빠른 경제성장과 중국의 부상이라는 조건에서 패권 유지·강화를 위해 개입을 확대해나가는 게 핵심 내용이다. 역설적으로 북한이라는 위협의 존재는 좋은 동력이 된다. 한-미 군사훈련에 첨단·전략 무기가 계속 투입되는 것은 정책 취지와 잘 들어맞는다. 중국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와 난사군도(스프래틀리군도)를 둘러싸고 중국과 다른 나라들의 갈등이 높아지는 배경에 이 정책이 있다. 나아가 중국은 서둘러 항공모함을 띄우는 등 군사력 강화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
미국이라는 패권국의 존재는 어쩔 수 없는 조건이지만 중국의 부상 또한 피할 수 없다. 우리가 중국과 갈등 관계를 추구하지 않는 한 재균형 정책의 일부분으로 깊숙이 들어갈 이유는 없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 ‘재균형 정책의 축’을 자처한 것은 미국을 사고의 중심에 놓는 태도다.
이런 ‘동맹 중독’은 대외정책 전반을 규정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양국 간 공동비전에 따라 방어 역량과 기술, 미사일방어(MD) 등에 투자하고 있으며, 이는 양국 군의 공동 운용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고 했다. 이 말대로라면 이른바 한국형 엠디 체제는 중국·러시아·북한 등을 모두 겨냥하는 미국 엠디 체제의 일부분으로 이미 통합된 상태다.
동맹 중독은 대북 정책을 심각하게 제한한다. 미국이 재균형 정책을 내세울수록 대북 정책에 적극적으로 힘을 쏟을 동기는 줄어들며, 미국이 대화에 적극 나서지 않는 한 북한 문제는 풀리기 어렵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사실상 방관 정책인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 정책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를 ‘한-미 의견 일치’ ‘동맹 강화’로 표현했다.
‘중국은 북한을 버려야 한다’는 글을 얼마 전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고했다가 직장을 잃은 덩위원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기관지 전 부편집인은 중국이 한·미와 합의할 수 있는 남북통일 조건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미군 철수, 북한 지도부에 대한 보복 금지 등을 들었다. 아마도 중국이 용인할 수 있는 최대치가 이 정도일 것이다. 곧, 미국과 중국의 대타협, 미국과 한국의 발상 전환이 전제되지 않으면 한반도 관련 사안에서 중국의 적극적 협력을 얻기는 쉽지 않다.
한-미 동맹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수단일 뿐이다. 동맹을 절대화할 게 아니라 그 지나침을 경계해야 할 때다. 한-중 정상회담은 동맹 중독의 후과를 줄이고 균형을 이뤄가는 자리가 돼야 한다.
김지석 논설위원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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