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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신뢰프로세스와 북한 어린이 지원 / 김보근

등록 2013-05-19 19:39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문제는 실천이다.’ 5월8일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의회 연설을 들으며 떠오른 생각이다. 박 대통령은 연설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강조했다. “북핵은 절대 용납할 수 없고,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히 대응하되, 영유아 등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정치 상황과 관련 없이 해나가겠다”는 것이다.

“인도적 지원은 정치 상황과 관련 없이”라는 부분이 신뢰 프로세스를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과 구분하는 열쇳말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전 정부와 달리 남북관계가 갈등을 겪더라도 인도적 지원은 유지·확대하겠다는 의미인 듯하다.

‘듯하다’라고 표현한 것은, 지금까지는 박 대통령의 발언과 현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도적 지원은커녕, 이명박 정부 아래서도 가늘게나마 이어졌던 영유아 사업마저 중단된 상태다. 더욱이 통일부가 지원사업 재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비판 목소리마저 높다.

개성공단 문제에서 보면, 박근혜 정부는 ‘북한과의 기싸움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걸 최고원칙으로 삼은 양 행동한다. ‘회담 제안’이라는 중요 카드조차 사소한 명분 쟁취를 위해 써버린다. 작은 전술에 매몰돼, 한반도 평화라는 큰 전략은 못 세운다는 비판이 커지는 게 당연해 보인다.

박근혜 정부가 북한 어린이 지원 등 인도적 지원 문제를 대하는 태도도 이와 다르지 않다. 대북 지원단체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통일부는 최근까지 지원단체들에 북한 어린이용 지원물품일지라도 반출 신청서조차 못 내게 했다. 형식은 ‘요청’이었다지만 통일부가 대북지원 업무에서 ‘슈퍼갑’임을 고려하면 사실상 ‘강제’다. 남북간 긴장이 높아진 상황에서 통일부가 반출을 승인한다 해도 북한이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유란다. 아마도 북한이 반출 승인 물품의 수령을 거부하면 기싸움에서 ‘작은 패배’를 하는 게 아니냐는 조바심이 영향을 줬을 것이다.

이런 태도는 박 대통령의 대북전략에 대한 신뢰를 감소시킨다. 현재 상황이 계속되면 박 대통령이 비핵·개방·3000과 같은 대결적 대북정책을 펴면서, 신뢰라는 단어를 그저 ‘포장용’으로 활용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마저 확산될 수 있다.

‘정치 상황과 관련 없는 인도적 지원’은 선전이 아니라 실천용이어야 한다. 실천이 뒤따라야 박 대통령이 미국 의회, 나아가 전세계에 밝힌 주장이 가치있게 된다. 발언과 행동이 일치할 때 신뢰는 비로소 싹튼다.

물론 인도적 지원에서 북한의 대응은 변수다. 통일부 지적처럼, 물품 수령을 거부할 가능성도 있다. 큰 틀의 관계 개선 의지가 안 보이는 상황에서 가물에 콩 나듯 이뤄지는 인도적 지원은 ‘일종의 정치쇼’라고, 북한은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인도적 지원, 특히 북한 어린이 지원 노력은 결과에 관계없이 노력 자체가 한반도 평화에 밑거름이 된다. 북한이 수용하면 곧 신뢰의 길로 이어질 것이고, 설령 지원품 받기를 거부한다 하더라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남과 북의 모든 이들이 결국 어린이들을 키우는 엄마요 아빠들이기 때문이다. 북한 어린이 지원은 시도만으로도 모두의 마음에 ‘신뢰의 불씨’를 다시 지필 것이다.

세계적 어린이지원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이 5월7일 발표한 ‘출생위험지수’ 보고서가 가슴을 때린다. 보고서는 5살 미만 북한 어린이의 경우 1000명 중 33명이 목숨을 잃는다고 밝혔다. 동아시아 평균인 20명보다 65% 많은 수치다. 남한은 5명이다.

실천 없는 신뢰 프로세스는 이런 북한 어린이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말과 행동의 불일치는 오히려 이들의 생채기를 더욱 키울 뿐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해답은 역시 실천이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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