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충격의 미국 유학 첫 수업이었다. 두꺼운 안경을 쓴 큰 키의 마른 여교수가 가방에서 담배 두 갑과 재떨이와 옛날 흔히 보던 유엔 성냥갑 같은 것을 꺼낸 뒤 입을 열었다. 유럽에서는 대학원 세미나를 교수와 수강생들 집에서 번갈아 진행한다는 얘기로, 다음 수업은 자신의 집에서 준비한 식사를 하면서 진행하자는 제안에 모두 찬성했다.
다음주부터 저녁 여섯 시에 모여 각자 가져온 맥주나 와인을 마시며 수업을 했다. 수업 내용은 최상이라는 말이 부족했다. 아홉 시까지의 정규 수업 뒤 대개 자정까지 자유토론이 이어졌다. 서양사학사를 훑은 그 수업은 곧 스탠퍼드로 옮겨갈 세이바인 맥코맥의 텍사스 마지막 강의였다. 마지막 수업은 먼동이 틀 때까지 이어졌다. 민주주의의 역사를 공부하려고 유학 왔다는 내게 자신이 떠나게 된 게 안타깝다며 세세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바로 그날 스탠퍼드로 떠날 예정인데도 새벽까지 시간을 할애하고 차로 기숙사까지 데려다 줬다. 그날 오후 나는 전날 제출했음에도 빽빽하게 첨삭된 텀페이퍼를 사물함에서 발견했다.
유대계 독일인 맥코맥은 옥스퍼드에서 학위를 받은 고전학자였다. 그러나 그의 지식은 시공과 학문 분야를 초월했다. 첫 저작이 캘리포니아대 예술사 총서 첫 권으로 발간될 만큼 학문이 깊었다. 이후 그는 여러 학교에서 재직했다. 인류학까지 섭렵하여 안데스 원주민 연구에도 일가를 이루었다.
미국에서는 학교를 옮길 때마다 더 큰 보수를 약속해야 한다. 텍사스에선 다시 부르고 싶어도 못 부를 거목이 된 그가 학술대회의 발제자로 방문했다. 다른 일정을 뒤로한 그와 건물 앞 잔디에 앉아 한 시간 남짓 대화를 나눴다. 주로 내 논문에 대한 조언이었다. 그 장면에 놀란 다른 교수들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그 옛날 발표에서 약간의 가능성을 보았던 학생에 대한 배려였다.
멘토란 자처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진정한 멘토였다. 지난해 타계한 그가 그립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한겨레 인기기사>
■ 박 대통령 몰래 기내 대책회의? LA 이동중 보고 가능성 커
■ ‘박원순 제압’ 문건, 원세훈 지시 가능성
■ 안철수쪽 금태섭·정기남 10월 재보선 출마 시사
■ “밥 할까 빵 할까” 낭만돋는 경양식
■ 진영 복지부 장관, “올해 안 담뱃값 인상 어렵다”
■ 박 대통령 몰래 기내 대책회의? LA 이동중 보고 가능성 커
■ ‘박원순 제압’ 문건, 원세훈 지시 가능성
■ 안철수쪽 금태섭·정기남 10월 재보선 출마 시사
■ “밥 할까 빵 할까” 낭만돋는 경양식
■ 진영 복지부 장관, “올해 안 담뱃값 인상 어렵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