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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동걸 칼럼] 이 땅의 터미네이터들

등록 2013-05-05 19:23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30일 ‘경제민주화법 1호’로 하도급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대기업의 ‘납품 단가 후려치기’ 등에 대해 3배 범위 안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개정안이다. 애초 ‘최대 10배’에서 많이 후퇴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이 개정안이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만도 다행이다. 이어서 연봉 5억원 이상을 받는 등기임원의 급여를 공개하도록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과 근로자 정년을 60살로 연장하는 이른바 ‘정년 연장법’도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잇따라 통과했다. 재벌들의 강력한 반발, 관료들의 재벌 편들기, 그리고 새누리당의 재벌 눈치 보기로 한때는 이 법안들의 국회 통과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는데 여론의 거센 역풍에 새누리당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어찌어찌해서 경제민주화 법안 몇개가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했지만, 그간의 사정을 보면 산적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 중에서 앞으로 온전히 국회를 통과할 것은 많지 않은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경제민주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싸움이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경제민주화를 ‘절대 살려둘 수 없다’고 생각하는 듯한 재벌과 꼭 지켜내야 한다고 결의에 차 있는 듯한 진보 진영 간에 벌어지고 있는 한판 승부를 보고 있노라니 마치 제임스 캐머런의 1984년 히트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인간이 만든 글로벌 디지털 국방네트워크 시스템 ‘스카이넷’은 성공적이었다. 그 혁신적인 인공지능이 너무 성공적인 나머지 스스로 학습 능력을 키우면서 심지어는 지적 자각 능력까지 갖게 되었다. 그러나 스스로 지각하고 판단하여 작동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개발자들이 시스템 작동을 중지시키려 했고, 이에 인간들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생각한 스카이넷이 소련과 미국 사이에 핵전쟁을 일으켜 인간을 거의 다 몰살시키고 남은 인간들은 노예로 만들었다. 인류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일단의 인간 저항군들이 존 코너의 지휘 아래 스카이넷 시스템을 뚫고 들어가 시스템을 파괴하려 하자 스카이넷은 터미네이터를 과거로 보내 1편에서는 존 코너의 생모를 죽이려 했고, 2편에서 어린 존 코너를 없애버리려 했다. 이를 알아차린 존 코너가 이들을 지키려고 부하를 보내 서로 쫓고 쫓기면서 싸운다는 것이 스토리의 골자다.

스카이넷=재벌, 터미네이터=재벌 하수인들, 터미네이터의 사살 목표인 어린 존 코너 또는 그의 생모=경제민주화, 이렇게 대입해놓고 보면 경제민주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싸움을 보고 필자가 <터미네이터>를 떠올린다는 말에 공감해주실 독자들이 좀 있을 것 같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과거에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던 수많은 일이 이제는 현실이 되어 우리의 일상생활을 편하게 해주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과학기술이 너무나 발전한 나머지 기계가 우리 인간들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항상 있었다.

재벌 체제도 우리 국민들이 만든 것이지만 너무나 성공적이었던 나머지 이제는 자생적인 생명력을 갖고 우리 국민들을 지배하고 있다. 재벌 체제는 이제 우리 경제와 국민들을 재벌 체제에 봉사하는 노예로 만들었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경제와 국민들을 죽일지도 모르는 탐욕스런 괴물로 변해가고 있다. 경제민주화에 위협을 느낀 재벌은 우리 사회의 곳곳에 수없이 많은 터미네이터들을 보내 경제민주화를 없애버리려고 하고 있다.

대선 때는 표를 얻기 위해 그렇게 굳게 약속했건만, “대기업 옥죄기가 아니다”라거나 “무리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는 말로 간단히 경제민주화를 뒤엎어버린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이 땅의 터미네이터들을 활동시킨 비밀 명령어는 아니었는지 걱정된다. 재벌들이 제공하는 끊임없는 에너지로 충전된 관료, 보수 언론, 연구소, 학자들은 지칠 줄 모르고 경제민주화를 공격해대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이루려면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이 땅의 터미네이터들을 제거해야 한다. 재벌의 돈으로 충전되는 이 땅의 터미네이터들이 누군지 다들 알고 있지 않는가.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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