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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분노의 포도

등록 2013-05-01 19:11수정 2013-05-08 19:29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요한 계시록> 14장에는 심판의 날에 이르러 세상의 악인들을 신의 분노의 포도주 틀에 넣고 처단하는 모습을 암시하는 구절이 있다. 미국의 대공황 시기에 정든 고향 오클라호마를 떠나 약속의 땅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는 농가의 여정을 그린 소설에서 존 스타인벡은 “배고픈 사람들의 영혼 속에는 분노의 포도가 가득했고, 가지가 휠 정도로 열매를 맺는다”는 표현으로 굶주린 사람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농산품의 가격을 올리기 위해 작물을 버리는 자본가들을 비난했다. “분노의 포도”는 소설의 제목이 되었고, 그것은 20세기 미국 문학에서 가장 철저하게 연구된 작품이 되었다.

이 소설은 서부영화의 거장 존 포드 감독의 영화로 더욱 유명해졌는데, 그것은 그가 만든 어떤 서부영화보다도 서부의 현실을 정확하게 그렸다는 평을 받는다. 소설도 영화도 삶의 터전에서 쫓기고, 캘리포니아에서도 착취당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애환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럼에도 가정이란 무엇보다 소중하게 지켜야 할 울타리이며, 노동자의 곤경은 스스로의 연대를 통해 극복해야 한다는 취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큰 울림이 있다.

스타인벡은 말한다. “‘나’로부터 ‘우리’로. 그것이 출발점이다.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것들을 소유하고 있는 당신이 이것을 이해한다면 당신은 스스로를 보존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그것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소유라는 것이 당신을 언제나 ‘나’로 동결시켜, 영원히 ‘우리’로부터 떼어놓기 때문이다.” 부유한 자들은 즉각 반격했다. 캘리포니아 농장주 집단은 스타인벡이 농부의 참상을 과장한 거짓말쟁이라고 몰아쳤고, ‘공산주의자’라는 친숙한 명칭으로 매도했다. 스타인벡이 소설 출간 훨씬 전부터 농장을 취재하여 비인격적인 환경이 농부의 영혼을 파괴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는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성장을 앞세우며 자본의 폭압을 조장하는 현실에서 다시금 노동자의 기본권을 생각한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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