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우리나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로 처벌받은 사람은 지금껏 1만6000명을 넘어섰다. 매년 600명 이상이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한다. 가히 세계 제일의 기록이다. 그럼에도 이 쟁점이 공론화된 것은 2000년대 초입에 들어서였다. 한때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군복무 대신 공익활동으로 대체복무케 하자는 방안이 긍정적으로 검토되는가 했더니, 인권을 천시한 이명박 정권 아래서는 답보 상태로 머물렀다. 이 문제에 대응하는 각종 법률기관의 태도와 의견을 살펴보면 곤혹스러움을 숨길 수 없음이 드러난다.
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의 정당성을 피력한다. 그러나 그들이 반도덕적-반사회적 악행을 저질렀다고 간주하는 판사는 거의 없다. 도주 우려가 전혀 없다고 보기에 판사들은 구속영장도 발부하지 않는다.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도 판사들은 확신에 찬 모습이 아니라, 뭔가 찜찜하고 미안한 맘으로 임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는 일률적으로 징역 1년6월의 실형이 선고된다. 단기형인데도 실형만 고집하는 범죄는 달리 없다. 그러나 1년6월 미만의 실형이나 유예형으로는 징집영장이 다시 나오게 되니 판사들은 할 수 없이 “가능한 최저형”을 선고하는 것으로 타협한다.
검찰과 법무부는 어떤가. 그들을 반사회적 범죄자로 확신하는 준엄한 논고는 거의 없다. 교정 당국은 그들에게 교정 행정의 일상적 보조 업무를 맡긴다. 국방의 위해 사범들로 간주되어 일률적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들은, 법무부 차원에서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인 셈이다. 교도관들도 이들을 교화 대상자로 생각지 않고 있으며, 그저 딱하다고 여긴다.
완강하게 처벌 입장을 고수해온 국방부도 한때는 “사회 여론만 호전된다면” 대체복무제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방안을 피력했지만, 지금은 정책적 공론화 자체를 억제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을 계속 처벌한다는 것과 국방력 유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현재의 처벌은 오직 응징의 수단밖에 아님을 국방부도 잘 안다. 이같이 형벌이 어떤 예방적 효과도 갖지 못하고 오직 응징의 수단으로만 작동할 때, 국가형벌의 사회적 정당성은 매우 낮아진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최고의 사법기관들은 현행의 처벌을 위헌·위법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전과자만을 양산하는 현행의 제도를 고수하기보다는,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오히려 다수를 차지한다. 최고 사법기관들의 견해 표명에도 불구하고 논쟁은 종식되지 않고 있다. 그들의 고충을 면전에서 듣는 하급심 판사들은 위헌제청으로 기존의 판례에 거듭 도전하고 있는 중이다.
국내외의 인권기구들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에 일치하여 반대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병역의무와 조화될 수 있도록,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인정과 대체복무제의 도입을 촉구하는 권고를 거듭 내렸다. 유엔 인권위원회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의 권리는 사상·양심·종교의 자유에 내재해 있음을 거듭 천명하면서, 유엔자유권규약의 해석을 준수하고 대안적 입법 조처를 할 것을 한국 정부에 요청하고 있는 중이다. 유엔 차원에서는 거듭 배척하고 있는, 한국적 특수성을 거듭 주장해야 하는 한국 정부의 곤혹감도 적지 않다.
문제 해결의 길은 국회의 입법이다. 소수자의 양심의 자유가 기존 제도와 근본적으로 타협될 수 없을 경우에는, 일정한 조건하에 국가의 일률적 형벌권을 한발 양보하고 조화적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 이미 대체복무제는 여러 나라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다. 선거의 폭풍이 지나간 현시점이 대체복무제의 입법화를 위한 적기이다.
대체복무제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은 나름 일리가 있다. 그러나 헌법상의 인권 문제를 당장의 인기투표, 여론조사 차원에서 접근할 일이 아니다. 우리의 법률기관들과 그 종사자들이 느끼는 곤혹감과 딜레마를 좌시할 일도 아니다. 투옥의 행렬을 저지할 수도 없는 현 상황의 곤혹스러움에 대하여, 그리 어렵지도 않은 제도적 해결책을 논의조차 않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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