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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명구 칼럼] 자유로운 영혼을 키우는 곳, 자유전공학부

등록 2013-04-28 19:22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오늘은 욕먹을 각오를 하고 서울대학교 자랑을 좀 할까 싶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이야기이다. 자유전공학부는 ‘자유로운 영혼’을 키우는 곳이다. 학생들에게 ‘가장 실용성이 떨어지는’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사회가 정말 필요로 하는 인재를 키우는 곳’이다. 그래서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사고할 줄 알면서, 기존의 틀에 매이지 않는 정신과 마음의 근육을 갈고닦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 대부분의 대학이 법학전문대학원 준비 학교로 바뀌고 있는데 서울대만이 잘 버티고 있어 뿌듯하다. 서울대를 빼고는 한동대가 잘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는 4년 전 법학전문대학원, 의학전문대학원이 생기면서 남은 학생 정원 200명이 채 안 되는 규모로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교육의 목표는 새로운 학부 교육의 모델을 만들자는 데 있었다. 1980년대를 전후로 대학 교육은 교양과 전문 지식을 충실하게 ‘가르치는’ 교육에서 학생들 ‘스스로 배우는’ 교육으로 바뀌었다. 1990년대 중반, 정보지식사회의 요구에 따라 ‘스스로 탐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했다.

자유전공학부에서는 문과, 이과라는 틀을 고집하지 않는다. 언제든지 바꿀 수 있고, 둘을 같이 병행할 수 있다. 지난 4년간 인문계 학생 중 35명이 이과 전공, 10명이 예술 전공을 선택했다. ‘범죄학’, ‘인권학’, ‘유희문화학’, ‘법소통학’ 등 듣도 보도 못한 전공을 스스로 만든 학생들도 있다. 광주에서 일반고를 졸업한 한 친구는 처음에 생명과학을 하다가, 화학심화전공을 시작했다. 경찰대를 수석합격했던 한 친구는 경제학과 에너지자원공학을 복수전공한다.

근본을 질문하고 사고하는 훈련을 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도 다를 수밖에 없다. 비실용적 교과과정은 1학년 때부터 다르다. 주제 탐구 세미나(시간, 생명, 지식, 행복, 사랑 등이 이번 학기 주제다)를 최소한 2학기 이상 수강해야 하고, 자율 연구를 거쳐 고학년에 가면 창의 탐구, 고전 탐구를 이수한다. 거기에 국내, 국외 현장 체험도 해야만 한다. 이런 다양한 교육을 내실 있게 운영하기 위해 교수와 전문위원들이 한 학기에도 몇 번씩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면담한다. 어떤 과목은 교수가 3번 이상 학생을 개별 면담하는 게 의무화되어 있다. 비실용적 교과과정은 비용으로 따지면 참 비싸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건 돈 많고 성적 좋은 서울대 이야기’라고 타박하는 분들이 있다. 정말 그런가. 규모가 작은 대학, 성적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학생들은 자유로운 영혼, 근본을 질문하는 인재로 자랄 수 없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즘 <슈퍼스타케이>, <케이팝 스타> 등을 보면 화성을 만들고, 시를 쓰면서, 삶과 사랑, 낭만과 절망을 근본에서 고민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다. 악동뮤지션의 찬혁이와 수현이가 한국에서 자랐다면 새벽부터 이어지는 정규수업에 보충수업을 소화하는 데 벅차 천재적 악상과 시 같은 가사, 매력적인 음색이 가능했을까? 이런 아이들이 대학에서 똑같은 교양과 전공을 답습하는 게 좋을까.

학력고사 점수 높은 학생을 뽑기 위해 온갖 수를 쓰는 대학은 정말 실망스럽다. 교육부와 미래창조과학부가 한국의 미래를 끌고 갈 인재를 키우고 싶다면 취업률 따위로 대학을 평가하는 일은 멈춰야 한다. 국·영·수 공부와는 거리가 먼 아이들이라고 요리·미용 등 실습만 하는 게 타당할까,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대학 평가의 잣대도 자유로운 영혼들이 자랄 여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아직은 서울대가 사회의 실용적 요구에 바로바로 응답하지 않는 자신감이 있다고 믿는다. 회계장부도 못 읽는 대학생을 키운다고 큰소리치는 재벌에게 흔들리지 않고 있다. 생명과 시간을 근본에서 질문하는 인재, 현실과 현장에서 손발의 감각과 뇌의 영감이 만나는 체험을 한 학생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더 철저하게 비실용적 교육을 밀고 나갈 만한 책임감’을 천명할 필요가 있다. 자유전공학부는 이런 비실용적 교육의 실험장이라 믿는다.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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