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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곽병찬 칼럼] 천안함 공동조사로 신뢰의 토대를

등록 2013-04-22 19:09수정 2013-04-23 13:32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 논설위원
지난 연말 한 친구는 불쑥 이런 질문을 던졌다.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인 때여서 정치적 문제를 놓고 흉금을 터놓기는 어려운 때였다. 그래서일까, 그는 술잔이 몇 차례 돌고 나서야 그야말로 자다가 봉창 두들기듯 물었다. “천안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어안이 벙벙했다. 평소 그럴 친구가 아니었다. 설사 그렇다 해도 그렇게 돌발적으로 물을 사안은 아니었다. 나를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로 착각했나? 그러나 어쩌겠는가. 알루미늄산화물 논란, 스크루가 휘어진 방향, 수거된 추진체의 녹과 사인펜 글씨, 긁힌 배 밑창, 멀쩡했던 형광등 등 그동안 반증 차원에서 제기됐던 이야기들을 주섬주섬 챙겨보았다. 그러자 이번엔 짜증 섞인 목소리고 다그쳤다. “다른 사람 이야기는 말고, 네 이야기를 해라, 네 생각을!” 나도 짜증이 났다. “천안함의 진실은 과학의 영역인데, 어떻게 내 생각만 말하라는 거냐. 게다가 상반되는 과학적 근거들이 난무한다.”

그날 대화는 이런 짜증으로 끝났지만 그 뒤 지금까지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아니 연락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또 어떤 믿음과 신념을 요구할까 걱정됐다. 천안함으로 말미암아 생긴 강은 나와 그 친구 사이에만 흐르지 않는다. 우리 사회를 깊이 양분하며 흐른다. 한쪽에서 아직도 못 믿는 것이냐고 핏대를 세운다. 다른 한쪽은 말이 없다. 강요되는 믿음 앞에서 할 말이 없다. 정부와 국제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반증할 논거도 적지 않다. 그만큼 조사 결과는 미진했다. 경험 많은 러시아 조사단도 조사 결과를 배척하는 쪽이었다.

그날 그 사건은 천안함만 동강낸 게 아니라, 우리 국민까지도 동강냈다. 폭침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은 제 생각, 제 소신을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다. 종북, 빨갱이 소리는 물론 공안기관의 시선까지도 의식해야 한다. 그래서 침묵하고 있지만, 그건 유라시아 지각판을 밀어올리는 태평양 지각판처럼 언제 어떻게 터져나올지 모른다. 북한이 핵무기를 앞세워 남을 협박하는 상황에서도 우리 국민의 한마음 한뜻이 되는 걸 가로막는다. 그 책임은 불신이 아니라 어설픈 조사 결과에 있다.

남남 간의 옹벽뿐 아니라 남북 간에도 긴장을 임계점으로 고조시켰다. 남쪽 조사단이 내린 폭침 결론을 북은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빼도 박도 못할 근거가 부족하니, 북은 긴장과 대결의 책임을 남쪽에 돌리기도 한다. 휴전 상태에서 한쪽 편의 잠수정이 분계선을 넘어 다른 편의 군함을 공격해 장병 46명을 수장시켰다면 그건 전쟁 상태로의 환원을 뜻한다. 이달 초 북이 남북 간 ‘전쟁 상태’를 선언하기 전, 천안함 격침 조사결과가 발표될 때 이미 남북은 전쟁 상태로 돌아간 것이었다. 천안함 문제가 매듭지어지기 전에는 되돌릴 수 없다. 정권 말 대화의 물꼬를 트고 싶었던 이명박 정부가 북쪽과의 막후 접촉에서, 무엇보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쪽의 사과를 청하면서, 대북 지원을 약속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천안함 조사 결과에 대한 과학적 혹은 군사적 의문을 되풀이할 생각은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오는 27일 정지영 감독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가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된다. 정 감독은 제작 동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을 종북으로 몰고 고발하는 우리 사회의 비이성적 대응”이라고 말했다. 천안함은 우리 시대 불통의 장벽이 되었다. 영화의 주제는 천안함의 진실이 아니라, 위기에 빠진 소통이다.

남북 간에도 마찬가지다. 천안함을 둔 채 신뢰 회복은 기대할 수 없다. 폭침을 믿는 국민 여론이 신뢰 회복 노력을 가만두지 않는다. 따라서 신뢰 프로젝트 역시 천안함에 대한 합리적인 접근에서 시작해야 한다. 북은 이미 공동조사를 제안했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군사비밀 등 장벽도 높다. 그러나 정부는 이미 러시아에 조사를 허용한 바 있다. 어려움이야 있겠지만, 과정 자체가 신뢰를 쌓는 과정이니 거부할 이유는 없다. 합의된 결론에 이르지 않더라도, 양쪽은 대화의 물꼬를 틀 명분을 확보하게 된다. 폭침의 시비도 함께 따지는데, 호혜적 논의야 어려울 게 무언가.

곽병찬 논설위원,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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