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통해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를 훑는 수업을 하고 있다. 첫 시간에 콜럼버스를 다룬 영화를 봤다. 신입생이 절반 정도인 대규모 강의에서 대다수는 “나도 주인공처럼 진취적 자세를 가져야겠다”는 모범답안(?)을 내밀었다. 대학생답게 비판 의식을 갖고 역사적 사실에 견줘 영화를 ‘읽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다음 영화 <미션>을 봤다. 오지에서 벌인 감동적인 선교 활동을 소재로 한 이 영화에 대해 이번엔 대다수가 별로 느끼는 바가 없다며 애초에 왜 가톨릭 성직자들이 남미에 왔느냐는 수사의문문을 던진다.
수강생들의 태도 변화가 나를 슬프게 한다. 잠깐 사이에 그들의 비판 의식이 늘었을까? 아니, 그들은 교수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에 맞춰 감상평의 방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수업을 통해 자신을 계발시키는 것이 우선이고 학점은 그에 따라온다는 생각보다는, 학점을 따기 위해 교수의 성향에 맞추는 것이 먼저라고 여긴 그들이 가련하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생각을 만든 것이 기성세대의 알량한 교육정책이 아니었던가?
이 슬픈 상념에서 니체를 떠올리기까지는 먼 길이 아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초두에서 니체는 인간 정신의 세 단계 변화에 대해 말한다. 의무와 금욕의 상징인 낙타는 타율적 도덕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낙타는 사막에 가서 사자가 되는데, 자유를 획득하고 고독을 견디며 스스로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소극적 자유에 불과하다. 천진난만하게 거룩한 긍정을 하는 아이의 단계에 도달해야지만 인간의 정신은 자신의 세계를 찾으며 새로운 창조를 할 수 있다.
나는 지금 경쟁만을 강조하는 교육 제도가 창의력을 말살시킨 단적인 사례를 강의실에서 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내 수업이 그들에게 타율적 도덕이 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그들이 천진난만한 아이가 되어 스스로의 창의적 세계를 되찾기 바란다. 그 마음에 나는 지금 이 글을 쓴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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