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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명구 칼럼] ‘예의바르게 무관심한’ 개인들의 사회

등록 2013-04-07 19:27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2012년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총인구조사 결과를 보면, 2010년 기준으로 1인 가구가 415만가구에 달했고 2035년에는 762만가구까지 늘 것이라고 한다. 이는 전체 가구수(약 1700만가구) 대비 23.9%, 즉 네 집 건너 한 집이 혼자 사는 가구인 셈이다. 노인 1인 가구가 많은 걸 고려해도, 20대 75만, 30대 79만, 40대 63만명이 혼자 살고 있다는 수치는 그리 적은 수가 아니다. 2011년 유럽통계자료집에 나와 있는 국가별 1인 가구 비중을 보면 스웨덴 47.1%, 일본 31.5%, 미국 27.6%인데, 한국이 미국 뒤를 쫓아 24.7%, 중국은 6.8%였다.

혼자 살게 된 까닭과 개인적 삶의 연원은 모두 다르다. 노인들의 경우 배우자의 사망과 황혼이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20, 30대 여성 1인 가구는 선택적 비혼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찌하다 보니 미혼이라기엔 과년한 나이에 이르러 우연적(?) 비혼인 경우가 적지 않다. 부모와 함께 가정을 이루고 있다고는 하지만 삶의 형태는 ‘독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예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남성의 경우에도 가족을 부양할 만한 직업과 수입이 없어 배우자를 못 찾는 비자발적 미혼이 적지 않다. 행여 결혼에 이른다 하더라도 집은 당연히 남자가 마련해야 한다는 통념 때문에 결혼과 함께 렌트푸어가 되는 상황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소수의 화려한 싱글도 없지는 않지만.

혼자 사는 걸 스스로 선택했든,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든, 1인 가구는 우리 사회의 일상이 되었다. 서구 선진국에서 시작해서 일본을 거쳐 한국도 이제 가족도 개인화하고 조직도 개인화하는 사회로 들어선 셈이다.

참 역설적이게도 우리 모두는 자유로운 개인이 되고자 몸부림쳐왔다. 20세기 초 근대가 시작되면서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개인은 가장 바람직하고 성취해야 할 인간형이었다. 집단주의·국가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민주주의의 토대라 믿었고, 100여년에 걸쳐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자유로운 개인을 성취해왔다. 그리고 한 세기 동안 우리들은 가족과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계몽적 도덕적 주체’들이었다. 자기실현과 가족부양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마다하지 않았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성취한 전후세대의 자부심도 여기에 기초해 있었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멈추고 반복적인 경제위기가 오면서 최근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개인화는 과잉되고 지나치게 불안정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시장논리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사회에서 개인은 삶 전체를 조직에 바치는 성공 지향적 사람이 되거나, 경쟁 바깥으로 밀려나 비정규직 혹은 창업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모든 걸 기획하고 절제하면서 끊임없이 자기혁신하는 소수와 불안정한 생존 위에서 연약하고 흔들리는 삶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개인들. 외환위기 이후 이런 삶의 조건 위에서 과잉개인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2010년 초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보도프로그램에서 ‘무연(無緣)사회’라는 제목으로 단신화(單身化)하는 일본 사회의 문제를 연재물로 내보낸 적이 있다. 일본 사회에서 1인 가구가 2030년 40%에 이를 것이라 추정하고, 50살 남성의 3분의 1, 여성의 4분의 1이 미혼인 사회가 될 것이라 예측했다. 시리즈는 또 주변 가족·친척이 없어서 장례절차를 생략하고 병원 영안실에서 화장장으로 바로 가는 직장(直葬)을 치른 경우가 2009년에 약 9000명에 달했다고 보도했다. 고독사한 사람의 유품을 정리해주는 청소부 직업도 생겼고, 혼자 죽음을 맞았을 때 유품을 정리해주고, 자신의 사망소식을 친족들에게 알려주는 계약서비스도 생겼다고 한다.

10년 뒤쯤 우리 사회의 모습도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요즘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카페 안을 들여다보면 깨끗하고 세련된 공간에서 혼자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다. 자료가 없어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들은 정규직보다는 ‘시간제’ 아니면 ‘프리랜서’일 가능성이 많다. 다른 곳보다 시간을 보내기에 싸니까, 그리고 ‘예의바르게 무관심한’ 시선 때문에 혼자여도 뻘쭘하지 않으니까. 어느 대학을 막론하고 대운동장은 없어진 지 오래, 당시 함께 운동장을 누비던 학생들은 학교 곳곳에 위치한 카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강명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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