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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동걸 칼럼] 금융감독, ‘관치의 재구성’하나

등록 2013-03-24 19:26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금융권 시이오(CEO), 국정철학 고려해 교체를 건의(?)하겠다.” 신임 금융위원장의 말이다. 금융권 시이오를 왜, 어떻게 교체하겠다는 건지, 교체의 기준이 되는 국정철학이 금융에서 무엇인지, 그리고 누구에게 건의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해야 할 텐데 사실 우리 모두 대충은 알고 있다. 또 전혀 예상 밖의 일이라고 놀라는 척이라도 해야 할 텐데 사실 우리 모두 예상했던 일이다.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인물로 공공기관장을 임명하라”는 윗전의 지시가 있은 직후라 더욱 그렇다.

“(금융감독원이) 새 정부 국정과제 이행의 선봉장이 돼야 한다. 국정과제를 차질 없이 이행해 ‘창조금융의 견인차 역할’을 하겠다.”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취임식에서 한 말이다. 금융감독원이 응당 해야 할 금융감독이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할 테지만 금융감독원이 그 외에 달리 신경 써야 할 ‘새 정부 국정과제’는 무엇이며, 그것을 이행하는 ‘선봉장’이 되겠다는 것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창조금융’은 또 무엇인가? 사실 신임 금감원장이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했는지 금융권의 웬만한 사람들은 다 짐작하고 있다. 금감원장의 충성선서다. 권력기관의 장이 임을 향해 한 다짐이다. 무서운 말이다.

말 몇 마디 가지고 뭘 그렇게 야단스럽게 시비를 거느냐고 필자를 탓할 독자분들도 계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은 금융위원장이나 금감원장의 이러한 언행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 금융의 앞날이 더 걱정스러운 것이다. 박근혜 정부 5년 동안의 대한민국이 더 걱정스러운 것이다.

이미 지난 두세 달 동안 박근혜 정부의 무원칙성과 인사 난맥상, 그리고 장관 후보자들의 자질을 보았고 자기 자신의 편견만을 옳다고 고집하며 힘과 오기로 밀어붙이는 국정 스타일을 보았기 때문에 걱정스러운 것이다. 모피아들의 변신과 적응력, 관치의 기술을 잘 알기 때문에 더더욱 걱정스러운 것이다.

혁신기업에 대한 과감한 금융지원으로 ‘창조경제’를 달성하겠다는 감독 수장들의 의욕을 나무랄 것은 아니지만, 부창부수하듯 대통령이 ‘창조경제’ 운운하니 감독 수장들이 그에 맞춰 ‘창조금융’ 노래하는 것을 보면 우리 금융산업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창조경제’라는 말이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그럴듯하게 ‘창조’된 정치 구호에 불과하다면 금융 수장들이 하겠다는 ‘창조금융’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여하튼 엄청난 낭비와 부작용을 낳을 것이 확실하고, 만약 ‘창조경제’가 실체가 있는 구체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감독권을 동원한 강압적인 금융으로는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감독권을 앞세운 대출 강요가 어찌 ‘창조적인 금융’이 되겠는가.

금융 수장들은 취임하기가 무섭게 앞다퉈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금융위원장은 금융기관장들을 ‘국정철학’에 맞는 사람들로 곧 교체할 기세이고, 금감원장은 “중소기업대출 실적을 점검해 목표 대비 실적이 부진한 은행에 대해서는 적극 지원토록 독려”하고 “생산·고용 효과가 큰 중소기업에 대출을 확대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라고 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대한민국의 3대 권력기구에 들어갈 만큼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관이다. 이러한 기관의 장들이 “교체를 건의”하겠다거나 “독려”하겠다 또는 “유도”하겠다는 말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특히 그들이 관치가 몸에 밴 모피아 출신들인데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금융감독 당국의 수장들이 대통령의 뜻을 받들기 위해 금융감독권을 행사하기 시작하면 우리 금융산업은 발전할 수 없다. 특히 금융감독 조직의 개편을 앞두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대통령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경쟁적으로 감독권을 휘두르며 충성경쟁을 할 것은 뻔하다. 1960~70년대식 관치금융의 냄새가 나고 있다. 우리 금융산업도 1960~70년대로 퇴보하고 말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15년 전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사태를 만나 금융개혁을 단행하면서 금융감독 기구를 독립적·중립적인 조직으로 만들었던 이유를 되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970년대의 기억으로 금융감독을 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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