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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30 대 2, 내 인생 최악의 혈투

등록 2013-03-22 20:31수정 2013-03-22 20:43

[토요판] 전태풍의 편지
엔비에이 진출 좌절된 뒤
7년간 8개국 나그네 용병 생활
폴란드에선 깡패들과 싸우다
흠씬 맞고 팀까지 옮겼어요

마침내 2009년 한국 입성
합숙도 놀라운데 외박도 금지
허재 감독의 거친 입까지…
날 싫어하나 오해도 했답니다

와우! 팬들 여러분 보셨죠. 고양 오리온스가 6년 만에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어요. 우리 선수들 모두 좋아해요. 얼마 전 프로농구에 승부 조작이라는 어두운 소식이 알려지며 어수선하지만 저는 한국 프로농구가 성장하기 위한 진통이라고 생각해요. 팬 여러분의 뜨거운 응원만이 이 어두운 터널을 잘 빠져나갈 수 있게 할 거라고 생각돼요.

지난번 제가 쓴 편지의 반응을 살펴보려고 네이버 검색창에 ‘전태풍 편지’를 쳐 보았더니 최근 편지에 무려 400여개의 댓글이 달려 있더군요. 아내를 만나 프러포즈하는 장면을 주로 썼는데,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나 봐요. 다행히 악플은 별로 없고 대부분 선플이더군요. ㅋㅋ, 고마워요. 내친김에 오해를 풀어드릴게요. 초밥에 반지를 넣어 프러포즈했다고 했더니, 몇몇 댓글에는 “그것을 먹으면 죽을 수도 있는데…” “왜 하필 일본 음식인 초밥이냐, 김밥이나 비빔밥도 있는데…” 하고 아쉬워하셨어요. 미리 주방장 아저씨에게 반지가 살짝 보이도록 초밥에 넣어 달라고 부탁했고요, 초밥인 이유는 제가 그때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먹어 본 음식 중에 초밥이 맛있게 느껴져 그랬어요. 지금은 김치볶음밥에 넣어서 할 수도 있는데. 아! 농담이에요. 프러포즈는 한번으로 족해요.

오늘은 지난번 편지에서 예고해 드린 것처럼 유럽의 밤하늘 아래에서 30여명의 깡패와 싸운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조지아공과대학을 졸업한 뒤 아버지나 제가 바라던 미국프로농구(NBA) 진출이 좌절됐고, 모두들 실망이 컸어요. 아버지는 1~2년 버티며 계속 엔비에이 진출을 시도하자고 하셨지만 저는 탈출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유럽 농구시장에 뛰어들었어요.

그때가 2003년이었어요. 처음 간 유럽 국가는 러시아였어요. 당시 나이 23살. 태어나 처음 부모님의 품을 떠나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소속팀은 A 슈퍼리그의 사라토프 팀이었어요. 당시만 해도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심했어요. 특히 러시아인들은 흑인을 싫어했어요. 그러니 반쪽이 까만 저에게도 별로 호감을 주지 않았어요. 당연히 향수병도 심했고요. 결국 3개월 만에 러시아 생활을 접었어요. 경기 출전도 5경기에 그쳤고, 활약도 별로 못했어요. 실패작이었던 셈이죠.

저는 풀이 죽어서 미국에 돌아가 3주간 쉬었다가 이번에는 중국에 갔어요. 베이징 덕스 팀에 스카우트됐는데,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 활약을 했어요. 중국에서 저는 프랑스로 갔어요. 프로 A리그의 코랄 로안 팀에서 18경기 출전해 평균 14.7점, 도움주기(어시스트) 5.1개를 기록하며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어요. 2년 동안 머물렀는데, 비교적 순탄한 생활을 했어요. 그리고 다시 터키로 가서 1년을 활약했어요. 카르시으야카 팀에 소속됐는데, 리그 하위팀을 플레이오프 진출 직전까지 올렸어요. 19경기에 출전해 평균 득점 15.8점을 기록했으니 비교적 잘 뛴 셈이죠.

특히 터키에서는 한 사회 저명인사가 저녁 초대를 했는데, 살아 있는 양을 제 앞에서 목에 칼을 대 제물로 바치는 모습을 보고 기겁하기도 했어요. 아마도 제사에 쓸 제물이었는데, 그것을 보는 저에겐 너무나도 무서운 광경이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돼지고기를 먹지 못했어요. 현지 종교 탓이죠.

그리고 다시 프랑스에 가서 1년 있다가 드디어 폴란드로 갔어요. ‘드디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깡패 30명과 맞붙은 곳이 바로 폴란드이기 때문이죠. 야로스와프 팀에서 뛰었는데 22경기에서 평균 득점 13.8점에 도움주기는 5.3개를 기록해 이 부문 1위를 차지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잘나가던 어느날, 미국에서 온 같은 흑인 선수 1명과 한밤중에 술집에 갔어요. 새벽에 술집을 나서는데 술집 앞에 덩치 좋은 친구들이 까맣게 몰려 있었어요. 그리고 저희에게 시비를 거는 거였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저와 같이 간 친구가 술에 취해 어떤 여자에게 접근했는데, 그 여자가 깡패 두목의 여자친구였나 봐요. 제 친구는 키가 2m이고 체중이 120㎏이 넘는 거구였는데, 단체로 덤비니 속수무책이었어요. 나름대로 방어도 하고 주먹도 휘둘렀는데, 곧 일방적으로 맞는 상황이 됐어요.

제가 무술의 고수도 아니고, 평소 싸움도 해보지 않았는데, 게다가 술까지 먹었으니 한꺼번에 덤비는 깡패들을 어떻게 맞서겠어요. 5분 동안 집단 구타를 당했는데, 느낌으로는 한 시간이 지난 것 같았어요. 아마도 주변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를 했나 봐요. 경찰이 출동했는데, 이미 깡패들은 사라진 뒤였어요. 제 친구는 치아가 3개 빠지는 중상을 입었고, 저 역시 턱에 금이 두 군데 가는 부상을 입고 1주일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어요. 결국은 팀도 옮겨야 했어요. 제 인생 최악의 밤이었어요.

2007년엔 폴란드에서 크로아티아의 ‘KK-스플리트’ 팀으로 이적했어요. 비췻빛 바닷물 색깔이 환상적인 나라였어요. 그리고 2009년 한국에 올 때까지 그리스와 불가리아를 돌아다녔어요. 7년 동안 8개국을 돌아다녔으니 그야말로 농구공과 함께한 방랑의 세월이었어요.

마침내 2009년 전주 케이씨씨(KCC)에 입단하면서 길고 긴 나그네 용병 세월이 끝났어요. 그리고 한국 농구에 접하게 됐어요. 처음엔 너무 달랐어요. 요즘 유행어처럼 ‘달라도 너~무’ 달랐어요. 우선 프로선수들이 합숙을 하는 겁니다. 외박도 못하게 했어요. 외국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죠. 훈련도 힘들었어요. 오전과 오후에 2시간~2시간 반씩 훈련하는 것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또 비시즌에도 합숙 훈련을 하는 것을 보고 또 놀랐어요. 프로 선수는 스스로를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허재 감독님에게도 놀랐어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허 감독님의 입이 다소(?) 거칠잖아요. 처음엔 무척 당황했어요. 저를 진심으로 싫어하는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런데 조금 지나니까 알게 됐어요. 허 감독님은 결코 실력 없는 선수에겐 욕을 하지 않았어요. 경기나 훈련이 끝나면 곧 정 많은 형님으로 변신했어요. 결국 형처럼 가까워졌어요. 지금도 농구 코트에서 마주치면 반갑기만 해요.

아! 이제 이 편지도 오늘이 마지막이네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한국 생활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더욱 응원 많이 해주세요. 전 은퇴 뒤에도 가능하면 한국에서 농구 지도자로 일하고 싶어요. 마치 아버지가 저를 가르쳤던 것처럼 말이죠. 사랑해요, 여러분. <끝>

정리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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