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첫 인사와 관련하여 새 대통령은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민주헌정체제에서 그런 유혹은 개인의 내면에 머무를 뿐, 대통령이 준수해야 할 근거규범인 헌법은 인사권의 전횡을 용납하지 않는다. 권력의 분립과 견제를 위한 수많은 헌법적 장치가 대통령의 인사권을 제약한다. 또한 대통령은 헌정체제를 원활히 작동시켜야 할 헌법수호자로서의 책무를 진다. 대통령이 그런 헌법의 규정과 원칙에 합당하게 인사권을 행사하는지는 늘 꼼꼼히 짚어볼 일이다.
현안 중의 하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구성에 관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헌법재판소장이 공석이다. 이동흡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의 관문을 넘지 못하고 사퇴한 가운데, 후임자 선정이 별다른 해명도 없이 지연되고 있다. 이틀이 지나면 송두환 재판관이 임기를 마치게 되니, 곧 7인의 재판관 체제로 당분간 지내야 할지 모른다. ‘식물기관’이라 불릴 지경에 이르도록 결원 상태를 방치하는 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이고, 헌법기관으로서의 헌법재판소를 경시하는 처사다.
위헌결정 등 헌재의 주요 결정에서 3분의 2가 아니라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을 요건으로 함은 헌법에서 명문화하고 있다. 그 전제는 ‘9인의 재판관’이 상시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8인 혹은 7인 재판관하에서 위헌결정 등 주요 결정을 내리기가 훨씬 어렵다는 사실은 여태까지의 실례를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헌법재판소의 기능 마비와 위헌적 상황을 온전한 합헌 상태로 복귀시키기 위해 재판관 임명권자들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다만 폭넓은 신망과 역량을 갖추지 못한 인사를 억지추천한 뒤 임명을 강요하는 방식을 정당화할 수 없음을 당연한 전제로 깔고 말이다.
현재의 인사권 행사와 관련된 우려 중 하나는 감사원장 교체를 위한 흔들기 조짐이 노골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분위기에서 새로운 스타일로’ 대대적 사정을 하려면 감사원장 교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된 기관 아니냐는 논거도 더해진다. 요컨대 경찰청장 교체와 같은 선상에서 감사원장 교체를 희망한다는 청와대의 움직임이 공공연히 표출된다.
그러나 경찰청장과 감사원장은 차원이 다르다. 경찰청장의 임기는 헌법이 아닌 경찰청법이란 법률로 보장하고 있다. 경찰청장의 임기 역시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 임기는 법률로 보장된다는 점과 직무의 성질상 독립성의 요청이 조금 덜하다는 점에서 양해될 여지가 있다. 이 경우에도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하며, 국회에서 폭넓은 논의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면 감사원은 대법원·중앙선관위·헌법재판소와 마찬가지로 헌법기관이다. 감사원이 국가기관으로 대통령에 소속되어 있지만, 업무의 성격상 엄연히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감사원장은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할 필요가 없는 자리다. 헌법과 법률에 부여된 감사원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면 된다.
감사원장의 임기(4년)는 헌법상 명문화되어 있다. 감사업무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일환이다. 대법관·헌법재판관의 임기가 대통령의 교체와 상관없이 보장되어야 하듯이 말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감사원장의 임기를 건드릴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청와대의 횡포다. 만일 감사원장을 억지로 사표내게끔 불리한 환경을 조성한다면 이는 헌법의 간접침해가 될 것이고, 일방적으로 교체를 강행하면 위헌이 될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대통령의 취임선서는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로 시작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언합니다”로 끝난다. 헌법준수자이자 성실한 직책수행자로서의 대통령은 인사에서도 헌법적 제약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헌법기관이 온전한 권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결원이 있으면 사전에 채우고, 헌법기관장의 임기는 당연히 보장해야 한다.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통치권자가 아니라, 헌법상 부여된 권한을 수행하는 한정적 직무수행자임을 재확인한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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