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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사람] 극장의 우상

등록 2013-02-13 19:30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프랜시스 베이컨은 인간의 정신이 빠지기 쉬운 편견을 4대 우상으로 분류해, 그것을 제거해야 참된 논리인 귀납법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중 언어 자체의 모호성에서 비롯되는 ‘시장의 우상’의 오류는 사물의 본질을 호도하기 위해 특히 우리의 정치인들이 항시 찾던 꼼수였음은 이전 칼럼에서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내 판단으로 우리 사회 전반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것은 ‘극장의 우상’이다. 대저 철학자들의 언설에 단순 명료한 것이 드물 듯, 베이컨의 이 우상에도 여러 변종이 있다. 그렇지만 그들 사이의 공통분모란 스스로 어떤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고 권위가 있다는 타인의 견해에 의존하는 버릇을 가리킨다. 이것을 극장의 우상이라 부르는 것에 연기자들이 섭섭하게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연기자들이 아무리 멋진 연기를 창의적으로 펼친다 해도, 그들의 대사는 본질적으로 극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를 발설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에 극장의 우상을 심으려는 술책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브랜드’를 선호한다. 빵 한 쪽이나 커피 한 잔도 대기업이 경영하는 프랜차이즈 가게에서 먹고 마셔야 제품을 신뢰할 수 있는 것처럼 그곳에 간다. 대기업의 비인간적·비윤리적 경영 방식에 대해 다소라도 알고 있을 텐데 소비 행태는 브랜드 제품에 편향적으로 쏠린다. 그 사이에 지역 군소 업체는 고사하고 있다. 책도 매체에서 한번 소개라도 하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 그러는 동안 좋은 책들이 판단력을 잃은 독자에게서 버림받는다. 대기업과 매체의 관련이야 불을 보듯 뻔한 일인데. 이렇게 우상을 모신다, 우리는.

어차피 온 세상이 무대고 모든 사람이 배우에 불과하다면 극장의 우상이 만연하는 게 당연할까? 그렇다 해도 그럴싸하지 못한 대본을 우상처럼 떠받드는 것은 병적으로 보인다. 최소한 좋은 대사를 읊으려고 시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조한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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