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통령의 권한 중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게 인사권이다. 대통령에겐 “인사가 만사”라는데, 잘못하면 망사(亡事)의 출발점이 된다. 첫 인사는 대통령의 새로운 국정의 방향과 내용을 가늠케 하는 풍향계이기도 하다. 국민의 기대치와 실망도도 그에 따라 형성된다.
박근혜 당선인의 출발도 순탄치 않다. 극단적 언행으로 알려진 대변인의 선임에다, 헌법재판소장 후보의 극단적 편향성과 공사 구분의 모호함이 지탄거리가 되었다. 자녀의 재산 형성 과정과 병역을 둘러싼 의혹은 나름대로 입지전적 인물이던 총리 후보의 사퇴를 초래했다. 일이 꼬이다 보니 일정조차 차질을 빚고 있다. 인사 과정을 둘러싼 여러 경고음이 들려온다. 캄캄인사, 밀실인사, 불통인사라는 비판이 터져나온다.
그런 경고음에 맞서기라도 할 태세인지, 인사청문회라는 제도 탓을 하는 것도 문제다. 온갖 것을 들춰내어 가정을 파탄지경에 이르게 했다고 비판하고, 청문회 제도의 축소와 변형을 입법화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그런 주장을 하려면, 폐해의 발원지였던 한나라당의 행태에 대한 자기반성부터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전 국회의원은 “인사청문회 대상을 확대하고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인사청문회법 개정을 적극 추진”(2003년)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첫 인사청문회에서 장상·장대환 총리 후보를 줄줄이 낙마시키고, 자기표절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가며 김병준 교육부총리 후보자를 낙마시키고, 야당 몫이었던 헌법재판소 재판관 조용환 후보를 사상검증의 틀로 낙마시키는 등 억지 사례들이 즐비하다. 지금의 야당이나 언론이 종래 한나라당이 취했던 잣대 이상으로 꼼꼼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인사청문회가 왜 정책청문이 되지 않고 가정문제부터 건드리느냐는 비판도 있다. 인물 검증은 필요조건이고, 정책 검증은 충분조건이다. 어떤 정책도 그것을 담보할 인물에 대한 신뢰 없이는 추진될 수 없다. 앞으로 잘하겠다는 다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몇십년 살아온 경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병역·납세 등 국민의 의무 이행에 무슨 흠이 없는지, 의혹이 있다면 그에 대해 성실한 답변을 내놓는 게 우선이다. 그다음 정책 수행에서 전문성과 리더십이 있는지, 갈등사회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할 수 있는 통합적 지혜를 갖고 있는지 등을 살펴볼 일이다.
선거에 이겼다고 만사를 제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공직은 승자의 전리품이 될 수 없다. 인사청문회 제도를 둔 것도 상반되는 시각으로 그 인물 됨됨이와 공직 적격을 살펴보라는 고려가 들어 있다. 그런 취지에 합당한 인물을 먼저 후보로 내놓아야 할 것이다.
선거 전엔 늘 대통합을 표방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자파끼리 독식하자는 이기적 생각이 들 수 있다. 극히 편파적인 인사안을 제출하면서 옹고집으로 관철시키려면 파행이 생겨난다. 반대편을 지나치게 자극하는 인사안을 내다보면, 사소한 문제까지 집요하게 파고들어 낙마시키자는 심리가 조성된다. 공감을 얻지 못할 후보를 내놓고, 인사청문회 제도 탓만 하고 있는 것도 딱하다.
여기서 당연한 주문이 나올 수 있다. 우선 인재풀을 넓혀라. 국정에 필요하면 선거 때처럼 삼고초려하는 자세라도 보여라. 추천기구와 검증기구를 분리하여 엄격한 예비검증을 자체 내에서 거치도록 하라. 그러고 난 뒤 공직 수행과 관련 없는 가족생활, 프라이버시 관련 사항에 대한 폭로식 검증은 자제해달라고 정중히 부탁하라. 투서와 음해가 걸러지지 않은 채 한 공직후보자의 평생에 걸친 명예를 일거에 훼손하는 과오를 범하지는 않도록 노력하자. 그런 주문은 상식적으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은 대통령에게 고위 공직자에 대한 인사권을 위임했지만, 그 위임은 무조건이 아니다. 전문성도 있고, 민주적 리더십과 소통능력을 체화하고 있으며, 도덕성과 청렴성을 갖춘 인재풀 중에서 뽑아달라는 것이다. 인사청문회는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공직환경을 투명화하는 긍정적 기능을 갖고 있다. 인사의 첫 단계부터 제대로 하여, 성공한 대통령의 첫발을 잘 내디딜 수 있기를 바란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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