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구 논설위원실장
한국의 보수는 건강한가. 답은 아니올시다이다. 건강하냐고 묻는 것조차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제 있었던 특별사면과 국무총리 후보자 사퇴는 우리 사회의 주류세력이라는 한국의 보수가 어떤 모습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한국 보수의 가장 큰 문제는 알다시피 도덕성 상실이다.
김용준 총리 후보자가 자진 사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의 역량을 떠나 도덕성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아서였다. 두 아들의 병역 문제나 부동산투기 의혹 등은 국민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다. 보수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공동체 유지와 발전을 위해 병역이나 납세 등 사회적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보수는 사회적 의무는 회피한 채 탐욕스레 사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부와 권력과 명예를 한꺼번에 움켜쥐려 할 뿐 자제와 양보와 희생의 미덕은 찾아볼 수 없다.
더욱 한심한 것은 이런 행태를 모두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덮고 가려 한다는 점이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엊그제 “사람에게는 공과가 다 있고, 흠도 있고 장점도 있다”며 온갖 의혹을 받고 있던 김용준 후보자를 감쌌다. 물론 수십년 사회생활을 한 사람들이 초야에 묻혀 사는 청빈한 선비처럼 깨끗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 문제이고, 만약 공인의 자리에 부적절한 흠결이 있다면 스스로 사양하고 물러나는 염치쯤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서 보듯 이미 헌재소장으로서 사실상 부적격 판정을 받았음에도 버티고 있다. 한국의 보수는 도덕성 상실과 함께 뻔뻔함까지 갖춘 셈이다.
일그러진 한국 보수의 또다른 모습은 권력의 사유화다. 공적 이익을 위해 행사해야 할 국가권력을 사적 이익을 목적으로 분별없이 사용한다. 대다수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엊그제 특별사면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을 법과 절차에 따라 행사했다고 한다. 하지만 특사 내용을 보면 누구를 위한 특사였는지가 명백히 드러난다. 최시중·천신일씨 등 측근들을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권력의 사유화 경향은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강화돼 왔다. 집권하자마자 임기가 남은 공공기관장들뿐만 아니라 헌법에 임기가 보장된 감사원장까지 몰아냈다. 공적인 자리를 마치 전리품처럼 간주하고 이를 빼앗아 측근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권한을 남용했다. 좀 거칠게 표현하면, 공익을 위해 쓰라는 권한을 사적으로 활용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배를 채운 것과 다름없다.
이 과정에서 검찰이나 국가정보원 등 이른바 권력기관들은 철저히 망가졌다.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권력기관이 정권의 보위기관으로 전락한 것이다. 민간인 사찰이나 내곡동 사저 매입 사건 수사에서 보인 검찰의 행태는 권력의 사유화가 어떤 폐해를 낳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려고 정권을 잡으려는 것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적 권력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행사하라고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제한적으로 위임해준 것이지 집권세력의 배를 불리는 데 쓰라고 준 것이 아니다. 진정한 보수는 주어진 권력을 국가와 사회의 공동이익을 위해 행사하지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쓰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의 성패는 이런 사이비 보수세력과의 단절 여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행태로만 봐서는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공적인 권력을 밀실에서 몇몇 측근과 행사하면서 온갖 잡음을 낳고 있고, 고위 공직자 인선 기준도 도덕적 엄정함과는 거리가 멀다.
박근혜 당선인은 정책 측면에서 이명박 대통령에 비해 전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복지 확대나 남북문제에 대한 유연한 자세, 균형잡힌 대외정책 추진 등은 분명 우리 사회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정책들이다. 하지만 좋은 정책이 꼭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국정 운영 방식이 국민의 동의를 받지 못하고, 정책 추진 세력이 도덕적 정당성을 갖지 못하면 정책을 제대로 실현할 기회조차 갖지 못할 수도 있다. 박근혜 당선인이 사이비 보수세력과 확실하게 결별해야 하는 이유다.
정석구 논설위원실장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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