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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남과 북 ‘20년 뒤의 만남’ / 김보근

등록 2013-01-09 19:10수정 2013-05-16 16:27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20년 뒤 남과 북은 어떤 모습으로 만날까.’

올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육성으로 북한 신년사를 접하면서 든 생각이다. 북한 지도자의 육성 신년사는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신년사 이후 19년 만에 나온 것이다. 약 20년에 걸친 그 기간 동안 북한은 ‘기아’와 ‘탈북’ 등 온갖 부정적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북한은 그동안 한 해 계획을 담은 신년사마저 <로동신문> 등의 공동사설로 대체해왔다. 따라서 ‘육성 신년사’는 북한이 자신감을 다소 회복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읽힌다.

분단 상황에서 남북은 치열한 체제대결을 벌여왔다. 크게 봐서 한국전쟁 이후 20년마다 그 양상이 바뀌었다. 북한의 ‘기아’와 ‘탈북’ 이미지도 최근 20년 동안에 강화돼온 것들이다. 1997년 초 <한겨레21> 표지이야기로 북한의 기아현상을 다뤘을 때, 많은 사람들이 “정말 사실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아직 남한 언론이 본격적으로 북한 식량난을 취재하지 않던 시기였다. 지금은 너무나 익숙한 ‘사실’이 불과 20년도 안 된 과거에는 ‘믿기 어려운 현상’이었던 셈이다.

사실 한국전쟁 이후 처음 20년인 1970년대 초반까지는 북의 경제력이 남을 앞섰다. △소련에서 들여온 ‘선진 공장관리기법’을 국유화된 대형 공장들에 일괄 적용한 것이나 △땀 흘리는 노동을 중시하는 임금체계와 남한보다 높은 노동참가율 △전후복구를 위한 사회주의권의 원조 등이 북한의 성취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 초까지 이어진 다음 20년 동안 남북관계는 역전됐다. 경제규모가 커질수록 북한의 계획경제 시스템이 비효율성을 드러냈고, 1980년대에 시작된 극소전자(ME)혁명이 세계경제를 ‘노동력 중심’에서 ‘기술력 중심’으로 재편했기 때문이다. 이제 높은 노동참가율은 핵심 변수가 아니었다. 남한은 이런 변화의 흐름을 잘 탔다. 1987년 6월항쟁도 일정한 역할을 했다. 6월항쟁은 남한의 자본들에 ‘저임경제 청산’의 압력으로 작용함으로써 적기에 기술투자가 이루어지는 데 기여했다. 남한 경제는 이 재편기에 상층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 뒤 20년’에는 김영삼·이명박 정부에서 흡수통일을 공공연히 얘기할 정도로 남북의 격차가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북이 19년 만에 육성 신년사를 발표한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20년 뒤 북한 경제는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북한 경제가 활력을 되찾으려면 ‘시장경제 수용, 대규모 자본투자, 그리고 체제 보장’이라는 세 요소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이 세 요소를 확보하는 유일한 길은 ‘미국과의 수교’였다. 그런데 서서히 ‘중국을 통한 발전’도 대안으로 떠올랐다. 북한의 자신감 회복은 이런 ‘또다른 길’의 발견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중국 자본이 큰 규모로 북한에 들어가는 ‘또다른 길’을 생각해보자. 북한은 중국 자본을 통해 시장사회주의의 장점을 배울 것이다. 또 중국 자본이 북한 전역에 널리 퍼지면 미국의 ‘침략’ 가능성도 크게 낮아진다. 물론 중국은 북한에 대한 지배력 강화라는 과실을 얻는다. 결국 20년 뒤 북한은 크게 달라지겠지만, 고령화한 남한과의 협력에는 큰 관심을 안 보일 수 있다. 어쩌면 남과 북 모두에게 ‘통일’이란 단어조차 큰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다행히 김정은 제1비서가 신년사에서 남북공동선언의 존중과 이행 의지를 밝혔고, 박근혜 당선인도 기존 남북 합의 정신을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아직 남북이 함께 갈 길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닌 셈이다. ‘20년 뒤 남북의 공동 번영’이라는 희망의 길을 아직은 버릴 때가 아니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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