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디지털 시대, 대학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작년 12월22일치 <이코노미스트>는 ‘무크스’(MOOCs, Massive Open Online Courses, 대규모 온라인 공개강좌)에 대한 소개와 함께 전세계 대학들이 온라인 교실로 연결되면 몇 개의 슈퍼 대학만 남고 나머지는 곤란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했다. 시사잡지 <아메리칸 인터레스트>도 50년 안에 미국 4500개 대학 중 절반은 사라지고 하버드대 수강생은 10년 내에 1000만명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이 온라인 교실 시스템은 강의뿐 아니라 질문, 분반 토론도 하고 시험도 보며 졸업장도 주는 제도로 진화하고 있다. 최신 발명품인 유튜브와 위키피디아, 페이스북을 활용한 정교한 시스템을 통해 수십만명이 서로의 글을 읽고 논평하고 인기투표를 하는 ‘지구촌 교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학습 생태계는 1971년 영국의 개방 대학교가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활용한 새로운 실험에서 시작해서 미국의 매사추세츠공대(MIT), 하버드, 스탠퍼드대학교가 주도하는 온라인 강좌 시스템과 만나면서 새로운 플랫폼으로 완성되어 가는 중이다.
이런 학습 생태계의 출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일단 학생들은 세계 석학과 전문가들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많아진다. 물론 영어가 걸림돌이 된다. 중국은 이미 대대적인 번역을 통해 이 제도를 활용할 채비를 해왔다. 한국은 글로벌 시대에 살아남을 인재를 키우겠다는 집념으로 정부와 부모들이 합심해 영어 교육에 아낌없는 투자를 한 덕에 영어를 제2모국어처럼 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와 동시에 번역 시스템을 잘 마련한다면 이 제도는 학생들에게 배움의 폭을 한층 확장시켜줄 것이다. 교수는 어떨까? 일단 강의 부담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초기에 강의 구상을 한 뒤 그 분야 최고 강사의 강의를 선정해 학생들과 함께 들으며 토론한다면 수업의 질도 높이고 강의 준비 시간도 줄일 수 있다. 특히 서구의 최신 교재를 수입해 가르치는 이공계나 정보지식형 분야는 딱히 강의를 하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경험이 풍부한 조교들이 지도를 잘하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교수들은 연구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반면 온라인으로 대체할 수 없는 인문사회계 수업들은 늘어날 것이다. 학생들과 교수가 구체적인 역사적 시공간에서 전면적 관계를 통해 토론하고 사회문제를 풀어가는 지식 생산의 장이 더욱 풍성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한국의 명문 대학들은 이런 추세를 감지하고 발 빠른 준비를 해왔다. ‘세계 100위권’에 들어야 한다는 강박도 이 와중에 생긴 것이며 세계 유수 저널에 논문을 싣지 못하면 탈락하는 교수 계약제, 영어강의 의무수강제도 이 와중에 생긴 것들이다. ‘노벨상’급 학자를 유치하겠다고 엄청난 돈을 지급하기도 했는데 이제 그럴 이유가 없어지고 있다. 온라인 강좌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우리 문제를 제대로 다룰 적정기술과 자생적 지식 생산 체계를 튼실하게 만들어 가는 일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한국 대학이 가장 신경 써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학생들의 ‘멘붕’(공황상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학생 다수가 승자독식 경쟁 판에 휘둘리다 ‘떡실신’하는 상황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선/후진국’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구체제의 위기서열에서 ‘100번’ 안에 들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대학도 실은 ‘지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대학은 외형적 확장과 숫자 놀이에 지나지 않는 외부 평가에 연연해하지 말고 교수와 학생들의 ‘건강 상태’부터 돌보기 시작해야 한다. 글로벌 대학은 ‘글로벌 시장’에 몸을 파는 떠돌이 인력이 아니라 인류의 삶을 지속가능케 할 건강하고 탁월한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
중세의 신성한 전당이었던 성전이 시장 바닥이 되면서 중세와 운명을 같이했듯, 근대의 신성한 전당인 대학도 시장 바닥이 되면 망하고 만다. 그래도 공공재로서 본분을 지키는 대학은 살아남을 것이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제대로 살아남을 한국의 대학은 몇이나 될까?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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