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지난 12월19일 일어났던 ‘50대의 반란’은 우리나라의 선거 지형을 영원히 바꿨다. 근래에 보지 못했던 젊은 세대의 뜨거운 투표 열기를 간단히 제압할 정도로 그 힘이 실로 엄청났다. 이제 당분간 어떤 선거에서든 50대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여당은 여당대로 지키기 위해서, 야당은 야당대로 빼앗기 위해서.
무엇이 우리의 50대를 그렇게 많이 투표하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50대를 그토록 결집시켰을까? ‘불안감’이었다. 강제동원도 아닌데 10명 중 9명이라면 실질적으로 모두 다 투표장에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혁명의 광기가 아닌 한 이런 정도의 동원력이 있으려면 리더십, 후보에게 거는 희망, 지지 열기 등과 같이 앞에서 당기는 힘만으로는 안 된다. 뒤에서 등을 떠미는 어떤 강력한 힘이 있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50대의 등을 떠다민 것은 강력한 불안감이었다. 50대가 똘똘 뭉쳐서 보여준 것은 ‘50대의 힘’이 아니라 ‘50대의 불안감’이었다.
종북좌파에 대한 불안? 북방한계선에 대한 불안? 수구보수주의자들이 무슨 말을 하든 이건 다 핑계에 불과하다. 50대 이상이 느끼는 가장 큰 불안은 노후, 길고도 긴 노후에 대한 불안이다. 지금 당장의 문제이기도 하고 곧 닥칠 문제이기도 하다. 아주 부자가 아닌 한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얘기다. 그래도 과거에는 모든 게 대체로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 있었다.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은 그동안 저축해 둔 약간의 돈에 아파트를 줄여가며 노후를 보낼 수 있었다. 여유 없는 사람들도 어렵긴 하지만 안정된 직장을 가진 자식들에게 기대서라도 살 수 있었다. 그런데 모든 게 다 변했다.
우리나라의 50대 이상은 자산의 80% 이상을 부동산으로 갖고 있다. 그런데 집값이 자꾸 하락하면서 노후생활의 밑천을 많이 갉아먹었다. 경기침체에 인구 구성비 변화까지 겹쳐 부동산 가격이 바닥 모르고 떨어지면서 노후 밑천을 얼마나 더 까먹을지 아무도 모른다. 불안하기만 하다.
베이비붐 세대들은 정년퇴직을 하면서 자영업으로 내몰리고 있다. 노후용이라고 모아 놓은 재산도 없는데다 50대를 위한 마땅한 직장도 없으니 달리 할 일이 없다. 50대 자영업자만 자꾸 늘어나 176만명이나 되고, 전체 자영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어섰다. 경기는 안 좋은데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람이 많다 보니 돈을 제대로 벌기도 어렵다. 자영업자의 평균 생존기간은 3.4년이고, 생존비율은 4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한다.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장사도 망하고 집마저 날릴 지경에 처한 사람이 부지기수다. 가계부채자 중 가장 위험한 집단이 바로 50대 이상 자영업자들이다. 그렇다고 자식들에게 기댈 수도 없다. 자식들 형편은 더 안 좋으니.
불안하고 어렵기는 20~40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들은 불안하기 때문에 개혁을 원했고, 불안한 만큼 투표 참여 열기도 높았다. 반면 50대는 불안하기 때문에 개혁을 피했다는 것이 차이일 뿐이다. 20~40대는 미래를 위해 비용을 치르더라도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고, 50대는 당장 코앞에 닥친 노후 때문에 비용을 치를 여력조차 없는 것이다. 재기의 기회가 없으니, 그리고 길게 볼 수도 없으니 급격한(?) 변화가 두려울 수밖에 없다.
야당은 50대의 불안에 무심했고, 여당은 50대의 불안을 이용했다. 야당은 젊은층을 겨냥해 정권교체와 개혁만 외쳤고, 여당은 50대에게 ‘고통 없는 변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50대의 불안이나 20~40대의 불안이나 본질적으로는 같다. 미래를 저당잡혀 오늘 먹고살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해결책도 같다. 50대의 경제적 불안이 해결되면 20~40대의 불안도 상당 부분 해결된다. 누구든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보라.
제17대 대선이 끝나고 나는 한 강연 석상에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만 한다면 이명박이라도 지지하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50대의 불안을 진정 해결하기만 한다면 ‘독재자의 딸’이라도 지지할 용의가 있다. 제발 한번 제대로 해보시라.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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