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도쿄 특파원
일본 월간지 <중앙공론>이 지난 7월호에 일본의 재정 문제를 특집으로 다뤘다. 그 첫 페이지를 장식한 ‘선생님, 이대로 도망갈 생각입니까?’라는 제목의 사제간 대담이 기억에 선명하다. 이른바 ‘단카이세대’(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미쿠리야 다카시(61) 방송대 교수를 향해, 제자인 사토 신(34) 도쿄대 연구원은 ‘현 제도의 혜택을 고스란히 본 세대가 국가재정 악화에 대해 책임은 지지 않고 그냥 달아날 것이냐’고 항의했다.
고령사회인 일본은 연금·의료 등 사회보장관계비가 정부 일반회계 정책경비의 40%를 차지한다. 그 혜택은 대부분 기성세대에게 돌아간다. 공공서비스도 1943년 이전에 태어난 세대는 생애 동안 수익이 부담보다 4875만엔 많은 반면, 1984년 이후 태어난 세대는 부담이 4585만엔이나 많다는 재무성의 추산이 나와 있다. 가히 세대 간 착취라 할 만하다.
지난 19일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 당일,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에서도 세대 간 간극이 뚜렷이 보인다. 20대와 30대는 65% 이상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50대는 62.5%, 60대 이상은 72.3%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한테 투표했다. 고령세대에겐 ‘박정희 향수’가 있었겠지만, 젊은 세대에겐 깊은 한이 있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세대 간 격차의 핵심은 역시 ‘일자리’다. 좋은 일자리는 공공부문과 고임금을 주는 금융 부문, 소수의 대기업 일자리인데, 젊은이들에게 열린 문은 점차 좁아지고 있다. 나머지 일자리는 질이 나빠지고 있고, 일자리의 질적 차이는 소득 격차로 이어진다. 기성세대에게 선점된 부동산(토지)도 젊은 세대에게는 좌절의 씨앗이다. 땅값이 비싼 탓에 지금 한국의 집값 수준은 열심히 저축을 해서 집을 산다는 기대 자체를 포기하게 만든다. 사회보장에서도 젊은이들은 기여하고 부담하는 자의 처지가 되어 가고 있다. 국가 부채의 증가도 결국은 기성세대가 아니라 젊은이와 그 뒤 세대의 부담으로 돌아가고 있다.
우리 경제가 고성장 시대를 마감한 뒤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득권을 단단히 움켜쥔 이들만 승승장구하고, 나머지는 모두 급한 모퉁이를 돌아가는 기차 위에 선 사람들처럼 휘청거린다. 많은 이들이 이미 기차 바깥으로 튕겨나갔다. 젊은이들은 그런 시대의 최대 희생자로 서 있다.
일자리의 질적 차이를 줄이고, 중간 수준의 일자리가 크게 늘어나도록 해야 한다. 부동산으로 인한 불로소득은 사회로 환수하면서, 집 없는 이들이 소득수준에 걸맞은 임대료로 장기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해야 한다. 복지를 확충하되, 젊은이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에 높은 우선순위를 매겨야 한다.
방향을 찾기는 쉽지만, 구체적인 해법을 실행하기란 쉽지 않다. 크든 작든 기득권과 충돌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은 달랐지만, 한국의 고령 세대가 무슨 기득권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배려해야 하니 더 어렵다.
어쨌든 선거는 끝났다. 은퇴하거나, 은퇴를 앞둔 이들이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의 선택을 숫자의 힘으로 눌렀으니 나라의 앞날이 그리 밝지 않다. 하지만 진짜 정치는 선거가 끝난 뒤에 시작되는 법이다. 소리 지르지 않으면 남들은 아픈 줄도 모른다. 젊은이들이여, 목소리를 더 높여라.
정남구 도쿄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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