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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앙시앵 레짐과 희망 / 박민희

등록 2012-12-20 19:25수정 2012-12-20 21:03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중국에 19세기 프랑스 정치철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의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중국어판 제목은 <구제도와 대혁명>)을 읽는 독서 열풍이 불고 있다. 새 지도부 출범 이후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지휘하고 있는 왕치산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 서기가 최근 전문가 좌담회에서 이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하면서, 단숨에 화제의 책으로 떠올랐다. 시진핑 총서기 등 중국 새 지도부도 이 책을 읽은 것으로 알려졌고, 이 책이 오늘날 중국에 던지는 의미를 분석하는 글들이 연일 언론에 실리고 있다.

토크빌은 프랑스혁명이 돌발 사건이 아니며,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모순이 누적되다가 임계점을 넘는 순간 폭발하게 됐다고 지적한다. 18세기 절대왕정의 부패와 사회 모순이 누적되면서 결국 혁명으로 나가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 것이다.

중국 지도부가 갑자기 프랑스 혁명사 책을 꺼내든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 사회가 그만큼 위태롭고 절박한 상황에 와 있음을 경고하면서, 반드시 개혁을 이뤄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한 것이다. 베이징대 역사학과 가오이 교수는 <21세기경제보도>에 “지도층의 부패, 민심과 괴리됐는데도 지도층이 기득권을 고집하면서 악화되는 사회적 불평등, 언론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가운데 억압되는 사회적 불만의 누적 등이 결국 프랑스혁명과 같은 대혁명을 초래했으며,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중국 현대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이라고 말했다. 중국 가구의 지니계수가 0.61로 ‘세계 최고 수준의 불평등 국가’임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되었고, 한해 18만건의 집단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토크빌은 “모든 국민은 그들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한국과 중국에서 잇따라 지도부가 교체됐다. 양국 사회 아래엔 ‘이대로는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위기감이 흐른다.

시진핑 체제 출범 뒤 중국에선 변화의 기대가 한껏 높아졌다. 지도자들의 시찰 때 도로봉쇄가 사라지면서, 시진핑 총서기 등이 행사에 10분 지각했다는 소식도 화제가 되고 있다. 시 총서기는 덩샤오핑의 행보를 따른 ‘신 남순강화’를 통해 적극적 개혁개방이 절실하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인터넷에는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폭로하는 글이 쏟아지고, 현실 비판적인 글들과 각종 조사 결과들도 잇따라 발표돼 ‘백화제방’의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일시적 캠페인에서 멈출지, 권력에 대한 제도화된 감시와 시민들의 권리 강화로 나아갈 수 있을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현재 시스템에서 거대한 이익을 얻는 기득권층의 저항은 막강한 장애물이다.

한국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살림살이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은 커져 가는 상황을 바꾸겠다는 열망으로 혹한에도 투표소 앞에 긴 줄을 늘어섰다. 선거 결과에 대해 절반은 환호하고 절반은 한숨짓는 것이 우리 현실이지만, 새 정부가 사회 밑바닥의 절망을 직시하고 국민들은 당선인이 선거 과정에서 했던 약속을 반드시 지키도록 끊임없이 감시하고 요구하는 것이 희망의 출발점일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특권층의 부 독점, 젊은이들의 실업, 비정규직들의 절망, 삶을 불안으로 몰아넣는 부족한 복지 등 ‘앙시앵 레짐’을 바꾸지 못하면, 사회가 폭발하게 된다는 위기감을 새겨야 할 것이다. 그가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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