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12월14일 두바이에서는 인터넷 관련 논의로 새 세계지도가 그려지고 있었다.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인터넷 세상을 각 국가가 일정하게 규제하자는 움직임이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주최 국제전기통신세계회의(WCIT)에서 일었고, 144개 나라 중 89개국이 찬성표를 던졌다. 찬성을 주도하는 쪽은 중국과 러시아이며 미국을 위시한 24개국이 반대했고 나머지는 유보했다. 국제전기통신연합은 국제전화를 걸 때의 국제코드나 요금 등 국제표준을 정하는 기구로, 1865년 국제통신조합으로 시작해서 1932년 현재의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고 1947년에 유엔 산하 기구가 되었다.
1988년 월드와이드웹(WWW)이 등장하기 전에 법규를 정한 뒤 이번에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인터넷 관련 내용을 넣을지 말지를 놓고 회의 개막 전부터 신경전에 들어갔던 것이다. 사실상 이 개정안은 서명을 한 나라에서만 효력이 있는 것이지만 3분의 2에 육박하는 나라들이 이 법안을 지지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상 이 전선은 여러 차원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인터넷이라는 기술 혁명에 성공한 것은 미국이고 그런 맥락에서 인터넷 영역은 미국 정부가 직접 관리해 왔다. 1990년대 후반 비영리 단체인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 등이 만들어졌고 인터넷 세계 인구가 폭증했지만 연방 정부와 기업과 단체 간의 유기적 결속을 통해 미국이 여전히 인터넷 영역을 통제해 왔다. 국경을 넘는 인터넷 트래픽에 공정한 요금을 부과하자거나 인터넷 성장 환경을 함께 조성하자는 아시아 지역의 제안은 미국의 일방적 통제에 대한 반발이다.
세계 언론에서는 이번 개정안을 둘러싼 분리선이 냉전 시대의 지도와 일치한다면서 ‘디지털 냉전’을 거론하는가 하면, 인터넷 인구의 절반 이상이 아시아에 살고 있는 현상에 주목하며 인터넷의 탈서구/탈영어권화를 거론하고 있다. 이른바 ‘선진국’에서는 인터넷은 늘 개방되어 있어야 하고(오픈 인터넷), 글로벌 인터넷 거버넌스는 점진적으로 만들어질 것이라고 하지만, ‘후진국’에서는 이제 더 이상 구글과 애플 등 미국형 기업과 단체들이 인터넷을 독점해서 부익부 빈익빈(디지털 디바이드) 현상을 악화시키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며 인터넷 자체를 열어갈 것(오프닝 인터넷)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중앙집권적 권위주의 국가들이 나섬으로써 “인터넷 확산”(오프닝 인터넷)이 “글로벌 공유지로서의 인터넷”(오픈 인터넷)을 닫히게 할 위험은 농후하지만, 이번 투표로 미국 주도의 패권주의가 더 이상 지탱되기 어렵다는 것도 확실해졌다. 국제전기통신연합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혁명적 기술/문화를 다루기에는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있고, 특히 정부 대표들끼리만 모여 25억 세계 인구가 연결된 인터넷상의 미래를 논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일이지만 새로운 세계지도가 그려지는 시점임은 분명하다.
활자 매체의 혁명이 ‘근대적 혁명’을 이루었듯 인터넷 혁명은 ‘탈근대적 글로벌 시대’를 열어갈 전환의 매체다.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한국인터넷진흥원 등 정부기관과 통신 3사로 대표단을 꾸린 방송통신위원회는 이 회의의 성격을 제대로 알고서 그렇게 꾸렸던 것일까?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내년에는 서울에서 사이버스페이스 총회가 열리고 부산에서는 2014년 국제전기통신연합 총회가 열리게 되어 있다. 후진국과 선진국 상황을 두루 경험한 한국은 노력만 한다면 디지털 냉전의 문제를 푸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 체제를 유지하려는 이들은 여전히 ‘공유지의 비극’을 말하지만 공유지 자체가 소멸된 ‘사유지의 비극’에 직면한 지금, 공유 가능한 망 중립성의 세계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한국은 그 ‘창의적 공유지’의 역할을 해낼 최적의 위치에 있으며 이는 한국이 실질적 선진국이 되는 길이기도 하다. 조만간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시민사회, 이용자, 전문가 등 다양한 관련 주체들이 한데 모인 토론의 장이 활짝 열릴 것을 기대한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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