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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함께 살자 / 김중미

등록 2012-12-12 19:28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오늘도 수은주는 영하 10도를 가리킨다. 12월 들어 이어지는 강추위에 하루 세끼 밥이 목에 걸리고, 따뜻한 아랫목이 불편하다. 비루한 내 밥벌이도 죄스럽다. 동두천·평택·밀양·울산·강릉·서울 곳곳에서 살기 위해 곡기를 끊고, 살기 위해 철탑에 올라 허공에 몸을 맡겨야 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우리 일이 아니니 무심하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럴 수는 없다. 그들의 투쟁은 나의 투쟁이며, 내 이웃의 투쟁이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투쟁이기 때문이다.

귀농한 지 11년차, 올해 3000평의 논에서 수확한 쌀 50가마에서 얻은 수익은 700만원이 전부다. 그마저도 친환경 무농약 쌀이라는 것을 내세워 지인들에게 강매해 얻은 수익이다. 두 사람의 인건비는 기대조차 하지 않은 지 오래다. 그런데 대선을 코앞에 두고 대통령 후보들이 발표하는 농업대책에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엠비(MB)정부가 4대강에 쏟아부은 22조원 덕에 복지비가 깎이면서 국가가 청소년공부방에 지원하던 지원금이 끊긴 건 2010년이었다. 다행히 인천시와 구에 요청을 해 2년 동안 2010년의 지원금을 유지해왔는데 올해가 지나면 그 예산마저 깎일지 모른다. 연간 1억원 가까이 되는 공부방 운영비의 20%가 사라지는 것이다.

올겨울 한파가 시작되던 날, 2013년 대학 수시모집에 합격한 아이가 대한문 ‘함께 살자’ 농성촌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1급 시각장애인인 그 아이가 농성촌에 가서 할 수 있는 일은 문정현 신부님과 지킴이에게 안마를 해주는 것뿐이지만 그렇게라도 연대의 손을 잡고 싶어 했다. 아이의 꿈은 권력과 돈에 휘둘리지 않는 법조인이 되어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다. 자신의 노력만으로 소위 ‘스카이’ 대학에 입학할 만큼 성실한 아이지만 나는 그 아이가 꿈을 꼭 이룰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이 나라의 복지로는 가난하고 힘없는 장애인이 로스쿨까지 가는 길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날 농성촌에 같이 간 또 한 아이는 스물두살 대학생이다. 고3 때부터 용산 남일당을 사진과 그림으로 담으며 행동하는 예술가를 꿈꾸던 아이는 대학에 다니는 3년 동안 월 40만원인 기초생활수급비와 국가장학금 혜택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했다. 엠비정부에서 추진된 사회복지통합관리망과 부양의무제는 15년 동안 생사조차 모르고 살아온 아이의 친부와 친모를 차례로 찾아내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박탈했다. 아이가 강하게 항의하자 동사무소 사회복지 담당자는 부모에게 내용증명을 보내 친권 포기 각서를 다시 받았다. 국가는 그 아이가 받은 상처와 인권침해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정부는 내년에도 부양의무제를 바꿀 생각이 없다고 발표했다. 언론에서는 대국민 사기극 4대강 사업에 앞으로도 13조원이 더 들어가야 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주말, 서른다섯이 된 공부방 졸업생의 둘째 아이 돌잔치가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졸업생 한명이 지친 얼굴로 농담을 던졌다.

“이모, 나 요즘 사는 게 너무 힘든데 공부방 때문에 나쁜 짓을 못하겠어. 이모들이 그랬잖아. 착하고 성실하게 살면 된다고. 그런데 왜 나는 사는 게 점점 힘들어지지? 공부방이 책임져야 돼.”

다른 졸업생들도 맞장구를 쳤다. 미용사로, 택배기사로, 포클레인 기사로 일하면서 ‘투잡’도 마다하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나는 30대 가난한 가장이 된 그들에게 잘 살고 있는 거라고, 너희가 옳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여전히 우리가 사는 방법이 옳다고 믿는다. 철탑에 오르지 않고 목숨을 걸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세상, 함께 사는 세상은 오롯이 우리 몫이다.

18대 대선이 엿새 남았다.

김중미 작가·기차길옆작은학교 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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