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도쿄 특파원
5년 전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 나선 박근혜 현 새누리당 후보는 핵심 공약으로 ‘줄·푸·세’를 제시했다. 세금과 정부 규모를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우겠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앞의 두 가지 것은 실제 대선 후보가 되고, 대통령에 당선한 이명박 대통령이 충실히 이행했다. 정부여당이 법인세 부담을 크게 줄이고, 각종 규제를 대폭 줄이면서, 가장 큰 혜택을 본 곳은 재벌 대기업이었다.
5년이 지나 이번에는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박근혜 후보는 ‘민생 해결’을 강조하고 있다. 이해가 간다. 이명박 정부 5년간 줄푸세 정책이 민생을 파탄낸 탓에 옛일은 잊고 아주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어야 할 테니까. 그런데 박근혜 후보가 말하는 민생해결책이란 게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박 후보는 이른바 ‘하우스푸어’를 많이 걱정한다. 빚을 많이 내서 집을 사는 바람에 빚 갚느라고 고생하고 있는데, 오를 것이라고 기대했던 집값이 떨어져 버려 이중의 고통을 겪는 이들이 하우스푸어다. 그런데 박 후보는 지분매각 제도를 얘기한다. 하우스푸어가 소유한 집의 지분 일부를 공공기관이 매입해줌으로써, 이자 상환에 허덕이는 가구의 숨통을 틔워주자는 것이다. 이것은 말장난이다. 이렇게 되물어보면 알 수 있다. “왜 지분의 일부를 팔게 해? 통째 팔아서 빚을 갚으면 이자 부담이 더 줄어들 텐데….”
박 후보는 ‘렌탈 푸어’라는 말을 쓰면서, 전셋값이 올라 고통을 겪는 세입자의 부담도 덜어주겠다고 했다. 집주인이 자신의 주택을 담보로 전세보증금을 금융회사에서 빌리고, 그 이자를 세입자에게 내게 하겠다는 것이다. 재밌다. 집주인이 세입자를 위해 내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린다? 집주인이 자신에게 부담만 되는, 그런 귀찮고 실익 없는 일을 하려 들까? 만약 이게 제대로 작동한다면, 이 정책을 창안한 사람에게는 노벨경제학상을 줘도 괜찮을 것이다.
박근혜 후보의 가계부채 공약도 매우 획기적인 내용으로 보인다. 18조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만들어 연 20% 이상 고금리 대출을 받은 채무자들의 이자 부담을 1인당 1000만원 한도에서 연 10%대로 줄여주겠다고 한다. 이건 그리 복잡한 정책이 아니다. 1000만원에 대한 이자가 연 20%면 200만원, 10%면 100만원이니까, 1인당 최대 100만원까지 나눠주겠다는 것과 똑같다. 그런데 정부가 왜 하필 그들에게만 우선적으로 돈을 나눠줘야 하는 것일까? 기금이 나눠준 돈은 누가 채워넣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 의문이 도무지 풀리지 않는다.
다른 후보들의 민생 공약에 흠이나 무리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박 후보의 민생 공약에 집중해 이 글을 쓰는 것은 그가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인 까닭이다. 진심을 말하자면, 당선된다면 하루빨리 그 공약을 잊어주시라고 당부드리고 싶어서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줄푸세 공약이 시행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박 후보는 지난달 26일 이른바 ‘국민면접’ 토론에 혼자 나와 자신의 민생정책을 홍보할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불행히도, 내가 보기에 박 후보는 자신의 정책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정남구 도쿄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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