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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박근혜 5년’을 상상하노라면 / 이계삼

등록 2012-12-06 19:28

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세 후보 간의 1차 텔레비전 토론을 보지 않았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굳히기 단계’를 솔솔 퍼뜨리며, 벌써 승리의 예감에 젖어 있을지도 모를 ‘그분’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고, 그분을 바라보며 연장될 5년의 시간을 떠올리는 것이 괴롭기 때문이었다.

누가 당선되든 우리 삶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예감에 젖은 채 대통령선거를 맞이하고 있다. 이미 세계적으로 닥쳐오고 있는 공황 수준의 경제위기에 대해 형성된 쟁점이 고작 ‘경제민주화’와 ‘복지’라는 사실도 안타깝지만, 복지를 말하며 그 누구도 증세를 말하지 않는 것이 의아하다.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면서 재벌이 지금껏 방기해왔고 마땅히 져야 할 규모의 경제적 부담을 새롭게 지우겠다는 후보가 없고, 재벌이 지금껏 자행해온 범죄 수준의 반칙과 악행을 바로잡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저 복지와 경제민주화도 결국 부도수표가 되고 말 것이라 예감하게 된다.

기성 정치에 기대하는 것이 이 나라 많은 국민들처럼 나 또한 그렇게 크지 않다. 그렇다고 국회의원 수를 바짝 줄여놓고 그 돈으로 다른 데 쓰자는 식의 ‘정치 구조조정’을 ‘새정치’라고 믿고 싶지도 않다. 민주주의란 원래 온갖 불순물로 뒤섞여 복잡하고 시끄러운 것일진대, 그런 소란스런 과정보다는 ‘고급 정보’를 지닌 테크노크라트들의 협의에 의한 ‘조용한’ 통치를 선호하는 태도를, 자존감과 명예심 따위 내려놓고 온갖 이념과 세력이 뒤엉킨 뻘밭에서 한발 두발 힘겹게 전진해야 하는 정치 공간의 본래적 성격을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는 저 고상한 비전을 ‘새정치’로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나는 ‘새정치’와 사회변화를 기약하는 차원이 아니라 ‘목숨’이라는 차원에서 이 선거를 바라보기로 했다. 이를테면 용산참사를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차원에서, 무엇보다 나 자신이 한 주체가 되어 있는 밀양 송전탑 싸움과 거기 함께하는 어르신들의 운명의 차원에서 나는 이 선거를 바라보기로 했다.

용산참사, 70대 노인이 도심 테러리스트로 규정당하고, 임용권자에 대한 충성이든, 소요진압의 역량이든, 뭔가 보여드릴 필요가 있었던 경찰 수뇌부의 무자비한 진압작전으로, 몇몇 대기업들이 나눠 가질 1조원대의 개발이익을 위해,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망루 꼭대기로 몰아넣고 끝내 불로 태워 죽이는’ 이 무간지옥의 세계를 대낮처럼 드러내준, 나에게는 일생토록 잊혀지지 않을 그 일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는 공포로써 나는 이 선거를 바라보고 있다.

나의 2012년은 1월16일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며 분신자결하신 일흔네살의 할아버지. 어르신은 ‘자네 같은 젊은 친구들이 저 불쌍한 할아버지 할머니들 좀 도와드리게’, 이렇게 말씀하시며 숯덩이 시신을 남겨두고 이승을 떠나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곤 했다. 그 목소리를 혼자 상상하며, 나는 이 기약없는 싸움에서 빠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무슨 일이 또 생겨선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지난 1년을 지내왔다.

그러나 나는 요즘 가끔 자다 깨어 속절없는 한밤중의 시간을 뒤척인다. 이 5년의 연장으로 얼마나 많은 목숨이 다시 죽어나갈 것인가. 지금 송전탑에 올라 강추위의 칼바람에 맞선 저 많은 노동자들, 그리고 이 선거 결과에 따라 다시 송전탑에 올라야 할지도 모를 이 밀양 땅의 70대·80대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정말 나는 잠이 오지 않는다.

경제민주화, 복지, 솔직히 나에게 이런 슬로건은 별로 와 닿지 않는다. 다만, 더이상 사람이 죽지 않도록 해 달라!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바라보는 나의 바람은 오직 이것이다.

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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