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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분노를 넘어 공감으로 / 장대익

등록 2012-12-05 19:18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어떤 중소기업인 모임에서 융합의 방법에 대해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직원들 사이에 놓여 있는 칸막이가 회사 내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여러분의 회사는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몇 주가 지났을까, 강연에 참석했던 한 기업인에게서 항의성 편지를 받았다. “교수님 말씀대로 해봤는데 완전히 역효과입니다.”

강연이 너무 인상적이었던지, 그분은 직원들 사이의 칸막이를 아예 없애버리셨다고 한다. 그랬더니 직원들이 오히려 뻣뻣해지고 심지어는 회사 나오기가 싫어졌다는 말까지 하더란다. 바로 답장을 드렸다. “대표님, 죄송합니다. 너무 나가셨네요. 칸막이를 치우라는 것이 아니라 높이를 적당히 낮추시라는 취지였는데, 소통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비밀도 적당히 보호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칸막이 없애기와 높이 낮추기의 차이는 무엇일까? 전자가 소통을 억지로 ‘강제’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소통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것이다. 아무리 소통을 원하는 사람이라도 최소한의 개인 비밀은 보호받고 싶은 것이 인간의 기본 욕구다. 칸막이를 어깨 높이 정도로 낮추자는 제안은 개인 비밀 보호와 정보의 공유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성공적인 전략일 수 있다. 고개만 들면 다른 사람과 눈이 마주칠 수 있게 하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공간도 유지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칸막이 없애기가 당혹스러운 규칙이라면 칸막이 낮추기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제안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여 자연스럽게 관행을 변화시킨 사례는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남성 소변기 아랫부분에 파리 스티커를 부착하여 소변이 튀는 양을 현저히 줄인 사례는 남성의 승부욕을 활용한 효과적인 해결책이었다. “당신이 머문 자리는 아름답습니다”와 같은 멋진 문구들을 아무리 써 붙여 놓아도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던 게 남성들 아니었던가!

이번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결정할 부동층을 끌어안기 위해 양 캠프에는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진보진영은 지난 보수정권들을 향한 분노를 이끌어내 부동층 유권자들을 투표장에 가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반대 진영은 오히려 그 분노를 역이용해 보수 대집결의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중이다. 게다가 이번 대선 판에서 공감의 상표 역할을 해왔던 안철수 후보가 사퇴하면서 부동층을 태우고 투표장에 내려줄 ‘대선 기차’는 어디에선가 멈춰버린 것 같다. 대선 13일 전인 지금쯤은 저 멀리 어디쯤에선가 보여야 할 텐데 말이다. 대체 무엇으로 부동층의 발걸음을 떼게 할 것인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분노 본능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유권자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물론 분노는 파충류와도 공유하고 있는 우리의 오래된 감정이기 때문에 원초적이며 강력하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이성의 눈을 순식간에 멀게 하여 자신을 고립시키고 오히려 간교한 계략에 맥없이 되치기를 당하게도 만든다. 가령, 분노와 응징을 다룬 최근 개봉 영화들이 감독들의 바람대로 대선에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또한 엊그제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보여준 이정희 후보의 분노가 결국 누구를 위한 표로 환산될지를 예측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

하지만 공감은 분노와는 차원이 다른 감정이다. 공감 본능은 다른 이들의 마음을 읽고 감정적인 교감을 일으키는 본능으로서 침팬지 이상에서나 볼 수 있는 상위 능력이다. 우리가 지구의 생명 역사에서 가장 독특한 종으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분노와 응징 능력 때문이 아니었다. 공감과 배려 덕분이었다. 분노를 넘어 공감에까지 이르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대선의 승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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