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찬 논설위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서 소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 중에 들었다. 한동안 넋을 놓고 있던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내 몸이 반쯤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 (그의 죽음은) 이명박 정부가 강요한 것이다.” 상심과 분노가 얼마나 컸던지 그의 건강은 급속히 악화됐다. 평생 여러 차례 겪은 죽음의 고비에서도 냉정하게 몸과 마음을 추슬렀던 그였지만, 노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는 주체하지 못했다. 5월29일 영결식에서 목 놓아 울던 노정객의 좌절과 분노는 지금도 우리 가슴을 떨게 한다. 결국 3개월도 채 안 돼 그 뒤를 따랐다.
박정희, 전두환 등 역대 독재·권위주의 정권이 꿈꾸던 것이 있었다. 박정희는 하다못해 교통사고를 위장해 그를 죽이려 했고, 아예 현해탄에 수장시키려 했다. 그가 키운 정치장교 전두환은 그에게 빨갱이, 내란음모죄를 뒤집어씌워 사형을 선고했고, 곧바로 집행하려 했다. 당대에 성공하지 못한 이 꿈은 하다못해 헤어스타일까지 박정희를 본뜬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특권사회에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 노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이를 통해 김 전 대통령까지 한 묶음에 보냈다. 한때 경쟁자로서 이 대통령을 경원한 박근혜 후보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두 사람의 운명공동체는 이렇게 이뤄졌다.
선거 와중에 작고한 분들을 끌어들인 의도를 꾸짖는 사람이 있겠지만, 사실 두 사람을 선거판으로 끌어낸 것은 박 후보다. 그는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다음 거의 모든 유세에서 참여정부 심판론을 주장했다. 중산층 몰락 정권, 분열 조장 정권, 이념 투쟁 정권인 참여정부의 부활을 막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현 정권의 공과를 따지고 평가하는 심판장인 대통령선거의 취지에서 보면 기상천외한 발상이다. 물론 문재인 후보에겐 아킬레스건이겠지만, 불행하게도 무덤에 있던 노 전 대통령을 선거판으로 끌어냈다. 그의 죽음과 한몸이었던 김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김 전 대통령은 그해 6월11일 6·15 공동선언 9주년 기념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그렇게 고초를 겪을 때 500만명 문상객 중 10분의 1인 50만명이라도 ‘그럴 수는 없다’며 나섰어도 노 전 대통령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2주 뒤 기념위원들과의 오찬에서, 그는 아마도 마지막이 되었을 긴 당부의 말을 했다. “나는 이기는 길이 무엇인지, 또 지는 길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기는 길은 모든 사람이 공개적으로 정부에 옳은 소리로 비판해야 하겠지만, 그렇게 못하는 사람은 투표를 해서 나쁜 정당이 (이기도록 하지) 않으면 됩니다.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집회에 나가고, 작게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됩니다.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습니다.”
박 후보는 두 사람만 불러낸 것이 아니었다. 이 정부와의 일체감을 과시했다. 있지도 않은 노무현-김정일 비밀회담과 서해북방한계선 포기 등의 공세를 펼 때부터 이 대통령과의 찰떡공조가 드러났고, 이한구 원내대표는 아예, 이명박 정부를 대놓고 두둔했다. 노 정부의 실정을 정부가 대부분 회복했다는 식이었다. 검찰의 시궁창 같은 뒷구석이 까발려지면서 박 후보가 차별화 시늉을 했지만, 이로써 무의미해졌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이 대통령은 ‘북한이 선호하는 후보가 있다’는 발언으로 야당을 몰아세웠고, ‘친이계’ 좌장 이재오 의원은 박근혜 지지를 선언하면서, ‘정권 재창출’을 처음 거론했다. “정권 재창출에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게 우리의 책무”라는 것이다.
전선은 분명해졌다. 이 의원은 물론 김영삼·김종필 등이 박근혜 지지를 밝혔다. 한편에 ‘박정희-이명박’ 연대가 분명하게 섰고, 다른 한편엔 이들에 의해 죽임으로 몰린 ‘김대중-노무현’이 있다. 김대중-노무현 이름의 정권 교체인가, 박정희-이명박 이름의 정권 재창출인가. 김 전 대통령은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보고만 있고, 눈치만 살피면 악이 승리합니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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