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안철수 전 무소속 대통령 후보의 거취가 여전히 안갯속이다. 후보 사퇴를 발표하고 지방으로 떠났던 그는 닷새 만인 그제 서울로 돌아가 측근들과 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후보 지지와 관련해 “개인의 입장이 아닌 지지자의 입장에서 판단하겠다”고만 말했다. 안 전 후보 지지층의 50~60%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쪽으로, 15~20%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지지로 옮겼으며, 25~30%는 부동층으로 넘어갔다는 게 대체적인 여론조사 흐름이다. 문맥으로 볼 때 그가 부동층의 정서를 고려하는 것 아닌가 짐작해보지만, 어디까지나 짐작일 뿐이다.
대선 국면이 이상하게 꼬였다.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은 안 전 후보의 거취와 일부 지지층의 상실감을 최대한 부각시키려 하고 있다. 야권후보 단일화 효과가 나타나기는커녕, 기왕의 문재인 후보 상승세마저 주춤하는 흐름이다. 지지율이 오르고 내리는 것은 그럴 수도 있다. 정말로 심각한 문제는 정권의 국정실패를 심판하고, 민생파탄으로 깊어진 서민들의 고통을 덜어줄 방안을 찾는다는 대선 본연의 의미가 실종되고 있다는 점이다.
안 전 후보 쪽은 “지지자들의 마음이 정리되지 않아서”라고 말한다. 지지자들의 서운함은 이해된다. 이들이 품었던 새 정치에 대한 열망은 존중받을 가치가 충분하며 기성 정치는 쇄신하는 게 마땅하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폐쇄적 풍토와 기득권 구조는 분명히 문제다.
하지만 새 정치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실패한 정권을 심판하고 그 정권을 연장하려는 기도를 막아내는 일이 결국은 새 정치의 최우선 과제 아니겠는가? 이명박 정권이 연장될 경우에 가장 고통받을 사람은 서민들이다.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언제 어디에 가서 새 정치를 한단 말인가? 새 정치와 정권 심판, 민생 활로 모색의 과제가 분리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안 전 후보가 ‘지지자의 입장’을 거론한 데서도 깊은 고민이 느껴진다. 그는 평소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끌어가는 리더십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뒤에서 밀어주는 수평적 리더십을 지향한다고 말해왔던 까닭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른 것 아닐까.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었고 투표일이 열아흐레 앞으로 다가왔다. 새누리당은 이명박 대통령에서 이인제, 이회창, 김종필에 이르기까지 보수 총결집을 이루고 실전에 들어갔다. 사실상 전쟁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때 지도자가 지지자들한테 “나가 싸울까요, 말까요?”를 묻는다는 것은 좀 어색해 보인다.
역사적 지도자들은 시대적 과제가 걸린 싸움에서 으레 선두에 섰다. 안 전 후보도 지금 자기 생각을 명확하게 밝히고 지지자들의 이해와 동참을 요청하는 게 옳을 듯하다.
백범 김구는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보다가 죽는 일”이라며 “우리 독립 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지도자는 공공의 과제와 대의, 시대정신 실현을 위해 100번이라도 희생하고 헌신하는 존재임을 일깨우는 말이다. 안 전 후보 주변에서 “문 후보를 돕더라도 절박감이 생길 때에, 이겨도 안철수 덕에 이기게 할 것”이라는 등의 말이 나온다. 유불리를 재며 주판알을 튕기는 이런 이야기가 안 전 후보의 생각과 무관할 것이라고 믿고 싶다.
안 전 후보는 돌아갈 다리를 불살라버렸다고 했다. 정치를 계속할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를 한몸에 받는 사람으로서 그의 존재감은 여전히 크다. 우리 민주주의를 튼튼히 하는 소중한 인적 자산으로 계속 남아 있길 기대한다. 이 시점, 그의 선택을 주목한다.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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