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영 집필노동자
두 달간 언론과 대중의 관심은 야권 단일화 논의에 내내 집중해 있었다. 아름답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지만 어쨌든 후보 등록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와 맞설 상대가 정해졌다. 그리고 그 ‘야권의 대표주자’에게 정권교체의 열망을 모아주기 위해 스스로 사퇴를 한 ‘진보’ 정당 후보도 있다. ‘정권교체’를 통해 ‘정치쇄신’을 하고 그것이 곧 ‘새 정치’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재인 후보 쪽은 ‘새 정치 공동선언’을 꼭 지키겠다고 하는데 나는 이 새 정치의 내용에 여전히 의구심이 생긴다.
정권교체를 열심히 외치는 동안에도 한쪽에서는 오늘도 어제처럼 생존을 위한 투쟁이 있어왔다. 11월20일부터 한상균, 문기주 그리고 복기성 세 명의 쌍용차 해고노동자가 철탑 위에 올라 농성중이다. 그 전에 단식농성을 하던 김정우 지부장은 정부의 무관심 속에 41일을 견디다 결국 병원에 실려 가고 말았다.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의 투쟁은 어느새 1800일을 넘었다. 이건 단지 ‘상징’이 되어버린 일부 투쟁 현장일 뿐이다. 실제로 전국 곳곳에서 노동자와 철거민 등을 중심으로 진행중인 투쟁의 지도를 그려보면 진짜 ‘국민의 열망’을 모아야 할 곳은 어디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국민의 뜻’을 존중한다는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의 단일화 직전 텔레비전 토론 내용에는 이에 대해 한마디의 언급도 없었다. 노동 없는 새 정치의 실체다. 유행어처럼 너도나도 정치쇄신과 경제민주화를 말하지만 노동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한갓 공허한 수사일 뿐이다. 그래서 노동을 중요한 의제로 가져가는 노동자 대통령 후보에게 눈길이 간다.
노동자를 대표해서 출마한 김소연 후보는 “노동자에게 귀책사유가 없는 해고이므로, 해고회피 노력과 관련하여 자산 매각, 근로시간 단축, 순환휴직 실시, 전환배치, 전직 등 경영진의 부담에서 시작”해야 한다며 궁극적으로 정리해고 제도의 폐지를 주장한다. 급진적이고 비현실적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2002년 대선 공약으로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라는 ‘3무 정책’을 들고나올 때도 이는 우리 사회에서 낯선 정책이었다. 10년 사이에 이 정책들은 현실적으로 중요한 의제가 되었고 무상급식은 일부 이루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박근혜 후보의 입에서도 무상보육이 “절대적으로 진정성 있는 정책들”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 아닌가.
이렇게 가능하지 않아 보이는 정책들이 가능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현장에서의 투쟁이 정책에 추동력을 주었기 때문이다. 사학비리에 맞서 고등학교 때 투쟁을 시작한 이후 25년간 권력과 싸워온 ‘여성 비정규 노동자’ 김소연 후보는 이번 선거 출마도 ‘선거투쟁’이라고 한다.
후보 등록 이후 문재인 후보는 참여정부의 실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한명 한명 불러주고 싶은 이름이 있다. 참여정부에서 산화한 노동자와 농민을 기억해야 한다.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줄 때 비로소 사과는 의미를 가질 것이다. 이해남, 이현중, 이용석, 김주익, 곽재규, 송석창, 박상준, 김춘봉, 정상국, 박일수, 김동윤, 류기혁, 김태환, 하중근, 정해진, 이근재, 허세욱, 전응재, 이경해, 오추옥, 정용품, 전용철, 홍덕표. 이렇게 23명의 열사가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부당해고에 맞서며, 또한 농민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던졌다. 이들과 함께 투쟁의 역사를 쓰고 있는 노동자 후보는 굳이 ‘진정성’이라는 언어를 열심히 팔지 않는다. ‘새 정치’를 말하며 노동 없는 정치쇄신으로 옷만 갈아입는 이들일수록 텅 빈 껍데기에 그저 진정성이라는 언어를 꾸역꾸역 채우려 할 뿐이다.
이라영 집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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