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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본선의 한판 승부를 보고 싶다 / 신진욱

등록 2012-11-20 19:13수정 2012-11-22 17:28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독일의 사회학자 게오르크 지멜은 1903년에 <노이에 도이체 룬트샤우>에 ‘경쟁의 사회학’이라는 중요한 논문을 기고했다. 여기서 지멜은 경쟁의 본질이, 같은 목표를 먼저 취하기 위해 각자의 에너지를 극대화하는 데 있다고 봤다. 고로 경쟁에선 상대를 이겨야 하지만, 이기는 것 자체는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원래의 목표다. “연적(戀敵)을 물리쳤다 해도 여인이 내게도 사랑을 주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다.” 이 목적의식이 실종되면 경쟁은 맹목적 투쟁으로 변한다. ‘죽 쑤어 개 주랴 하다 차라리 개가 낫다 한다.’ 1987년 야권 분열에서 얻은 이 교훈은 어부지리의 사회학적 메커니즘을 응축한다.

대선이 한달도 남지 않았다. 그동안 문재인과 안철수 두 진영은 야권 지지층의 사랑을 구하는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하지만 이 경합이 더 나은 정치를 위한 경쟁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야권 내부의 권력투쟁이었음을 부정할 수 있는가? 선거판을 채운 것은 우리 사회의 문제와 해법에 대한 열띤 논쟁과 시민들의 흥겨운 참여가 아니라, 경쟁 상대에 대한 불신과 비난, 묵은 원한과 익숙한 정치기술들이었다. 야권은 위험한 늪에 빠졌다. 양 캠프는 국민을 바라보고 뛰는 대신 서로를 마주보고 싸웠다. 지금 야권 정치의 보편적 패착은 이 ‘잘못 놓인 전선’이다.

상황이 엄중하다. 이미 모두 상처가 깊다. 누구로 단일화되면 승산이 얼마다, 지지층이 몇% 빠진다, 그런 편협한 계산들이 오히려 야권 정치를 병들게 한다. 크게 보라. 진정한 문제는 본선을 힘있게 끌고나갈 아래로부터의 동력이 없다는 데 있는 것 아닌가. 시민들이 전혀 신명이 안 나고 있고, 이 모든 것이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싸움인지 묻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야권 단일화 이후 제일의 과제는 시민들 마음속에 흥과 믿음과 열정의 불씨를 되살리는 것이다. 어떻게?

무엇보다 단일화의 승자는 자신을 낮추고, 야권 모든 세력의 장수들에게 가장 귀한 자리를 청하여 사람과 세상을 크게 품어야 한다. ‘독일 역사상 가장 탁월한 총리’로 꼽히는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는 모든 당파의 인재를 두루 요직에 앉힐 것을 권했고, 현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정적을 권력의 핵심에 앉히는 용인술로 유명하다. 편협한 당파 논리가 아니라 오직 능력에 따라 등용하라는 조조의 유재시거(唯才是擧)를 행동으로 보여줄 때 어떤 꼼수 정치도 결코 줄 수 없는 큰 감동과 신뢰가 퍼질 것이다.

하지만 흥이 나는 선거를 만드는 주인공은 결국 시민들 자신이다. 양쪽 지지층의 마음속에 단단히 자리한 불신과 미움, 냉소와 혐오, 각종 음모론과 흉흉한 상상들을 이겨내는 자신과의 싸움이 필요한 때다. 그 모든 감정과 생각엔 물론 이유와 논리가 있다. 하지만 반대 입장에서도 똑같이 나름의 이유와 논리가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지금 우리는 경쟁관계가 격해질 때 일반적으로 겪게 되는 집단심리를 경험하고 있다. 늪 안에서 이기려 하지 말고 늪에 빠진 우리 자신을 봐야 한다.

단일화라는 늪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더이상 정치에 열광하고 절망하는 청중이 아니라 정치를 바꾸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오직 그것만이 ‘시민정치’라는 단어에 값하는 정치다. “아무 의미 없을 것 같은 수백만의 지극히 작은 행동들이 세상을 바꾼다.” 미국의 존경받는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말이다. 남은 한달, 치졸한 계산과 힘겨루기를 뛰어넘어, 우리 사회의 돈과 힘과 언로를 장악한 기득권 세력들과 한판 대결을 벌이는 역사적 승부를 보고 싶다. 그리고 그럴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한귀영의 1 2 3 4 8#] 단일화 룰, ‘디테일’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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